가토 기요마사 스레 개잡소리





加藤清正





말타면 되는데, 아시가루와 함께 마라톤 하는 맨.








>통치는 일류
25만석을 원맨경영
문무양도였던 모양.






>>통치는 일류
탑다운방식 돋아서 흔들리던 재정은 사후 줄적자.
능력, 카리스마는 최고였다.










가토 기요마사는 무장으로선 일류였지만, 번주시대까지 살아남았으면 2류였을걸.






>얼마전에 TV에서 특방을 봤는데, 무장이라기 보단 관료에 가까웠다.
>시즈카타게 전투 이전에는 전장에서 전공 올린 기록도 없고.
상당히 신경질적인 성격이었던 모양.
모든 계획을 세부까지 철저하게 확인해야만 하는 스타일.
그래서 죽을때까지 원맨경영.
바보아들에 신경쓰지 않은결과, 가로가 도주. 가문 단절.










탑다운 방식의 함정.
개역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가토의 낭인은 재사관에 실패.
반대로 상부의 명령에 기대지않았던 후쿠시마의 가신들은 전부 재사관했다.










>상부의 명령에 기대지않았던 후쿠시마의 가신들은 전부 재사관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알콩중독 갑질 상사.
취하면 부하한테 할복을 명령. 다음날 왜 할복했냐고 비난하는 상사..
심지어 사고친후에도 금주할 기색은 전혀없음.
개역시 후쿠시마 욕먹는건 통쾌했다.









>시즈카타게 전투 이전에는 전장에서 전공 올린 기록도 없고.
시즈카타케 때가 만20세. 그때 시바타측의 무장을 죽였으니 대단한것.
그 이전에는 돗토리 성 공략때 인질 공개처형.
이건 무공이라고 부를수도 없다.
당시 위치는 코쇼(小姓)






>시즈카타케 때가 만20세.
보통 초전이 15세인걸 감안해면 과보호.
히데요시의 몇안되는 근친자라서 그렇겠지.









화장실에선 높은 게다 신을정도로 결벽증.










호랑이!
호랑이 마니아.










카토 키요마사 무쌍




>키요마사 무쌍
저거 중간부터 사람없는 산악지대로 진군.
조선반도는 서부가 평야, 동부는 산.








>사람없는 산악지대로 진군.
적이 없어도 강행군 돋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거냐!
말리는 사람이 없었나.







>키요마사 무쌍
저지랄 하는 바람에 병참 엉망진창돼서, 아사자, 동사자가 속출했다.







>카토 키요마사 무쌍
애시당초 동북부 함경도 공략이 메인이었으니 이상한 진군은 아니다.
화살표 언저리에서 회군해 2왕자를 생포.
도내로 돌아온 뒤로는 서쪽의 지배행동에 전념.









가렵네(사망 플래그)






>사망원인은 불명.
>역시 암살당한거냐?
아즈미한테 암살당했다.(만화)









소설에선 코가이(子飼い)의 요리인이 이에야스의 스파이.
독살당했다.






>요리인이 이에야스의 스파이.
이케나미 쇼타로(池波正太郎)의 닌자군상(忍者群像)이란 단편집.
우메하루(梅春)라는 요리인이 닌자.









오사카 전투 전에 죽은게 다행일지도.
어려운 결단을 내릴 필요없이 충신인채로 죽었다.
*가토 기요마사(1562년 7월25일~1611년 8월2일)






>오사카 전투 전에 죽은게 다행일지도.
파트너 같은 위치의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도요토미도 못지키고, 실질적으로 가문도 박살남.
도요토미 은고측의 부의 일면을 짊어졌다.








>오사카 전투 전에 죽은게 다행일지도.
만약 오사카 전투까지 살아있었다면, 싸움을 회피하기위해 분주했을듯.
하지만 도쿠가와쪽 메신저라는 입장은 바꾸지 않았을걸.
여차하면 망설임 없이 도쿠가와쪽에 붙었을거다.









>그래도 살아있었으면 히데요리쪽를 감쌌을지도.
도요토미 7장은 히데요시의 코가이(子飼い).
도요토미 가문 자체에는 별로 애정이 없었을것같은데
이에야스, 히데요리 회담때도 히데요리가 자신의 저택에 머무는걸 거부했을정도니.










>도요토미 가문 자체에는 별로 애정이 없었을것같은데
키타노만도코로(北政所,히데요시의 정실)이 도쿠가와를 쓰러뜨리라고 말했으면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하지만 키타노만도코로가 도쿠가와 측이니.









히데요시가 오다 정권 찬탈하는걸 리얼타임으로 본 세대.
도쿠가와가 천하인이 되더라도 별 상관안했을걸.
니죠성 회견(二条城会見)에서 밑밥 깔았으니, 히데요리님의 결정에 따를뿐.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니죠성 회견
이거 이에야스를 막기위해 도쿠가와 측에 있었다라고 전해지지만,
최근엔 도쿠가와편이니까 도쿠가와측의 자리에 앉았다는 해석.









다들 도요토미 가문은 보전하려고 했지만, 도요토미 정권의 유지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히데요시 개인의 공포로 성립된 정권.
히데요시 죽은뒤에는 정권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정도.







>도요토미 정권의 유지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미츠나리는 자신들을 다이로(大老)라고 부르고, 이에야스를 부교(奉行)라고 불렀다.
자신들이야말로 정권의 핵심이고, 다이묘는 지방부교라는 인식.
가토, 호소나가, 쿠로다는 더 밑에 존재하는 지방부교.
후쿠시마 이외는 패배조이니까 때문에 성공하려고 이에야스에 붙었다.
도요토미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자들이 서군.
이걸 부수고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고 싶은 자들이 동군.
칠장vs이시다 미츠나리, 나쓰카 마사이에의 구도가 성립된 시점에서 이미 충돌이 시작됐다.









네네, 챠챠의 대립도 신빙성 없는 이야기.
파벌의 상징으로 모셔진 느낌.






>네네, 챠챠의 대립도 신빙성 없는 이야기.
뭐, 히데요리의 후견인이 돼주고, 병문안도 갔으니, 그 모친과 사이가 안좋을리가.
도쿠가와가와의 양호한 관계도, 이에야스보다는 어릴적 보살펴줬던 히데타가와의 관계.
나가하마 유치원을 포함해 네네씨의 모성파워아 당한 무장들이 많다.










>아마도 대하드라마 주인공은 못될걸.
조선전쟁 빼면 역사적인 장면에선 대부분 부재.







뛰어난 인물인건 맞는데, 어중간한 시점에서 사망.
역사에 영향을 줬다는 느낌이 전혀없다.







돌아오는 뱃길에선 죽을정도로 중도의 매독환자였는데, 회견때는 멀쩡한 얼굴로 있었다니 대단하다.










히데요리가 막부가 금교령내린 키리시탄을 오사카에 받아들이고,
낭인 고용해서 도쿠가와의 카타기리를 추방, 추격하게 방치할정도의 바보인건
키요마사도 예상 못했겠지.






칠본창의 한사람인 카타기리 카츠모토(片桐且元)를 쫓아내고 추격까지 하며
시내를 엉망으로 만든 시점에 말기.








우메키타 잇키(梅北一揆)로 히고의 일부를 점령당했기때문에, 시마즈를 싫어했던 사람.









코니시 유키나가
기요마사의 라이벌이자, 미츠나리의 파트너
최근 창작물에선 취급이 안좋다랄까 거의 안 나옴.








>고니시 유키나가
최근이긴 커녕 주연작 이외에서 좋은 취급받은 창작물이 없다.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에서도 대사가 없었던걸로 기억.








>좋은 취급받은 창작물
시라이시 이치로(白石一郎)의 해랑전 시리즈, 해장은 명작.
여기서 나오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엄청 멋있다.
명작이니까 꼭 대하드라마화, 영화화했으면 좋겠다.







'
>코니시야말로 좋은 포지션의 무장인데.
>코니시의 아군밀고, 외교문서날조는 솔직히 쉴드쳐줄수가 없다.
그렇게해서까지 무모한 외국정벌을 막으려고 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 방식으로 키요마사, 코니시를 경쟁시키려했지만 실패.
코니시가 아니라 오오타니를 경쟁상대로 붙여줬으면 나았을텐데.








미츠나리의 파트너
오오타니>코니시






미츠나리의 파트너는 시마 사콘.









미츠나리의 (가볍고, 바보에, 이용하기좋은) 상사는 우키타 히데이에.





>우키타 히데이에
히데이에는 뭐랄까 임진왜란 이전부터
도요토미 정권내에서 권력투쟁에 몰두했던 바보왕자의 이미지








>코니시는 어째서 세키가하라에서 잡힌거냐
멀리까지 도망치지 않고 근처에서 잠복하다 잡히는 패턴.









>근처에서 잠복하다 잡히는 패턴.
우키타도 상당한 기간 근처에서 잠복했는데,
오치무사 사냥당하지 않고, 오히려 주민의 도움까지 받았다.






>우키타는 오히려 도움받았다.
귀공자풍 인간은 그것만으로 득인가.
기행자 돋아서 오히려 안건드리는게 낫다고 판단한건가.










키요마사의 취급이 좋은건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뿐일걸.







>키요마사의 취급
이케나미 쇼타로는 키요마사를 좋아해 잘 다뤄준다.
대신 미츠나리를 엄청 싫어한다.










셀러리 갖고 들어온건 찬반양론.









코니시가 더 귀찮은걸 남겼다.











>쿠마모토는 지금도 호소카와가 아니라 키요마사?
쿠마모토 현민의 기상에 적합한건 키요마사쪽.
인프라 갖춰주고 수수하고 견실한 선정보단, 악정이라도 화려한 성을 건설해준쪽을 좋아하는 마조현민이니까.





>악정이라도 화려한 성을 건설
인프라를 갖춘것도 키요마사.
호소카와는 유지개량했을뿐.
공사에 참가한 영민에게 보수를 줬으니, 실질 인프라 공사 및 공공사업.







키요마사가 세운 쿠마모토 성때문에, 지금도 쿠마모토 현민은 밥먹고 삽니다.








덧글

  • 3인칭관찰자 2019/11/24 00:53 # 답글

    그러고 보면 키요마사는 지명도 높은 네임드+용장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지만 조선침략 때의 행적 외에는 지휘관으로서 특출난 무공을 세운 적은 딱히 없네요.
  • paro1923 2019/11/24 01:40 # 삭제 답글

    코니시와 시마바라의 난... 일본 대중매체에서 기독교는 일단 마개조하고 보는 풍조를 부추긴 원인 중 하나.
  • 포스21 2019/11/24 08:06 # 답글

    우리나라에선 임진왜란덕에 유명한데... 일본에선 취급이 박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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