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족 회고담 1화 장미족 회고담







이토 분가쿠





한 청년의 자위고민에서 일본출판역사에 남을 잡지가 탄생했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 청년의 이름은 이토 분가쿠(伊藤文学). 출판사 제2서방의 경영자이자 일본최초의 남성동성애자용 상업잡지 "장미족"의 창간편집장이다. 게이잡지를 창간한 인물은 역시 게이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이성애자다. 이성애자인 이토와 게이상업지. 이 두가지를 맺어준 것은 바로 자위경험이었다.





때는 1965년, 기묘한 남자가 제2서방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1932년생 이토는 당시 33세. 아버지 이토 토이치로부터 물려받은 제2서방에서 단1명의 편집자로 일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출판사이긴 하지만 가집, 시집 출판을 메인으로 하는 약소출판사. 사무소도, 집을 겸한 목조2층의 임대건물이었다. 그곳에 자작 원고를 들고 나타난 것이 당시 30살이었던 문필가 아키야마 마사미(秋山正美). "깜짝 놀랐습니다. 입고있는 정장, 넥타이, 구두가 전부 녹색이었거든요. 그런 사람이 녹색보자기에서 원고를 꺼내 이걸 읽어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원고에 적혀있는 내용은 올바른 자위방법. 그것은 남녀가 안전하고, 풍요롭게 고독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몽서이기도 했다.





이토는 그 원고를 읽고, 곧바로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제 자신도 젊은 시절 자위를 하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혹시 몸에 안좋을게 아닐까 걱정했죠. 하지만 어느날 읽은 책에 자위는 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 말이 절 구원해줬습니다. 그래서 아키야마씨의 원고를 책으로 출판하면 수많은 사람들을 안심시켜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위는 몸에 안좋다. 포르노가 범람하는 백화요란의 현대에, 다 큰 어른이 그런 말을 하면 누구나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젊은이들은 성지식을 접할 수단이 한정되어있었다. 물론 이토에게 구제욕구만이 있었던건 아니다. 이미 당시의 제2서방은 성적인 화제를 다루는 "나이트 북스" 시리즈를 간행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는 제1작 "음담독본"이 호평을 받아, 합계 60권이나 출판되었다. 약소출판사가 살아남기위해선 에로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라는 경영자, 편집자적인 타산도 있었다.







이토는 아키야마의 원고를 "외톨이 성생활, 고독한 나날을 위해"라는 외톨이 시리즈로 출판. 제목은 이토가 생각했다. 겉표지는 동화삽화 등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아카보시 료에이(赤星亮衛)가 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한 고급서적이다. 최종적으로 이 책은 2~3만부 팔리며, 히트작이 되었다. 이 책이 가져온 진짜 임팩트는 발행부수가 아니었다.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제2서방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키야마씨에게 각종 성질문과 상담이 쇄도했다. 이토가 예상했던대로 "읽고 마음이 편해졌다"라는 감상도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선 예상외의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동성애자의 편지. 저는 자위할때 동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런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기에 답답합니다. 이런 내용을 보내오는 사람이 남녀 가리지 않고 많았다. 당시 저는 동성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때문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죠. 그들이 처한 상황이 딱하다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동성이 아니면 성적흥분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연인을 만들기는 커녕 다른 사람에게 성정체성을 털어놓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조언조차 받을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됐을 때 이토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였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보자!!" 편지더미는 고독한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시장은 결코 좁지 않다. 이토에겐 그런 확신이 있었다. 이 직감은 훗날 장미족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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