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족 회고담 4화. 포르노 잡지라 불려도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장미족 회고담






일본최초의 상업게이잡지 "장미족"의 창간편집자가 본 게이미디어의 발흥과 족적





이토 분가쿠
1932년생
편집자, 실업가.
부친이 창설한 출판사 제2서방에 입사후, 베스트 셀러가 된 논픽션을 출판.
1971년 이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최초의 동성애 전문지 "장미족"을 창간, 편집장을 맡는다. 휴간과 복간을 되풀이하다, 2011년 편집장을 그만둔다.








1971년 창간된 잡지 "장미족"은 당시 남성동성애자들에게 귀중한 만남의 장이었다. 하지만 장미족의 가치는 펜팔 코너에 국한된것이 아니었다. 매월 잡지를 장식하는 다채로운 작품들. 예를 들면 미려한 표지그림, 소설, 에세이, 삽화, 만화 등 대부분 다른 곳에선 접할 수 없는 오락이었다. 큰 특징은 이러한 작품들의 다수가 "아마추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 장미족에 실린 소설, 일러스트는 대부분이 독자투고였다. 전국에서 보내진것을 엄선해 좋은것을 게재했다. 독자 작품을 게재했기때문에 작가 개런티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월간지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다. 그런 의견은 하프포스트 일본판에 실린 라이터 우타가와 시이씨의 인터뷰 "장미족, 일본최초의 상업게이잡지의 공과"에 소개되어있다. 하지만 이토씨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원고료를 지불하려고 해도 작가의 개인정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작품을 보내주는 사람들은 커밍아웃을 두려워해, 주소, 본명을 전혀 기재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열심히 SM체험기와 소설을 보내오는 사사오카 사쿠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사람은 펜네임조차 기재하지 않았기때문에 내가 대신 펜네임을 정했습니다." 장미족에는 이렇게 게재된 작품에 대해 열렬한 찬사, 작가에의 응원이 항상 다수 도착했다. 이토는 그런 투고를 적극적으로 게재했다고 한다.





지면에 게재된 투고소설, 일러스트에 촉발되어 자신도 창작열에 불타는 독자들이 당시 많았을거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금전적 이득은 얻을 수 없었지만 대신 많을때는 3만명 이상의 독자와,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시대극조의 동성애소설을 양산해 인기를 얻은 타테시로(楯四郞)는 장미족 27호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한 반응을 기뻐하며, 이렇게 썼다. "태어나 처음으로 쓴 소설이 벤텐코조. 만약 장미족이 없었다면 소설을 쓰지도 않았을거고, 작품활동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장미족은 요즘으로 치면 픽시브, 소설가가 되자 같은 창작계 투고 사이트와 비슷했다.







하지만 투고사이트와 장미족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작품의 게재여부가 편집부 스탭의 심미안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이이자, 편집부의 핵심인 후지타 류, 마미야 히로시와 이성애자 편집장 이토 사이에 의견차이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게이 남성들은 호불호가 심하다. 그래서 자기 취향이 아닌 작품에는 박했다. 예를 들면 야마카와 쥰이치(山川純一)의 극화만화. 나는 임팩트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게이스탭들은 굉장히 싫어했다. 그림이 소녀만화 같고, 수염이 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이유. 후지타군에겐 이토씨는 게이가 아니니까 모르는거에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동성애자가 반드시 취향의 호불호가 심한건 아니지만, 후지타, 마미야가 강한 고집의 소유주였던건 틀림없다.





이토는 기본적으로 "게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것!!"이란 그들의 주장을 존중했다. 하지만 편집장으로서 괜찮다고 생각한 야마카와를 지원하고, 게이스탭들로부턴 반응이 시원찮았던 레즈비언 기획을 게재하는 등 자신만의 감성을 발휘했다. 스탭과 편집장의 이러한 싸움은 픽시브에는 없는 요소다. 이것이 장미족의 질높고, 구심력있는 세계관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장미족은 당시 남성동성애자들에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있는 장소"였고, 그걸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 역시 많았다는건 확실하다. 이토는 장미족 323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미족은 포르노 잡지일지도 모른다. 외설스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같은 기품만큼은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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