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은 어째서 젊은 관객을 사로잡았는가? 영상문화생활




[너의 이름은]은 어째서 젊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풍 변화를 읽는다

오노데라 케이



http://realsound.jp/movie/2016/09/post-2640.html


일본을 대표하는 멜로 드라마의 타이틀을 그대로 인용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젊은 세대의 관객을 중심으로 대히트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지금까지의 신카이 작품을 봐왔고, 그 작풍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놀랄 일이다


사람은 때로 누구나 석양이나 새벽풍경에 바라보며, 무드에 젖어 시 같은 감상적인 대사를 내뱉거나, 편지나 문자를 보낼 때가 있다. 그런 상태는 대개 시간이 지나면 "낫는" 것이며, 훗날 그 행동을 떠올리고는 "아 그때 왜 그랬을까…"하고 침울해한다. 하지만 그걸 반성하기는 커녕, 그때의 감각을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옮기는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다.




본작의 첫부분, 쏟아지는 별이 하늘에 만들어 내는 띠. 태양광이 반사되어 가느란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광경에 등장인물의 독백이 덧대지는 장면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신카이 작품에서는 캐릭터의 매력, 영상의 쾌감보다는, 렌즈 플레어나 빛의 입자 등의 실사적인 이펙트가 만들어내는 리얼한 배경과, 대사를 이용한 내면 설명, 이를 내포한 시적인 무드가 표면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등장인물은 일과 생활에 쫓기면서도, 문뜩 멈춰서 골목길 풍경과 방안을 둘러보며 감상에 젖는다. 그 순간이야말로, 그들이 세속에서 떠나 본래의 순수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며, 그 부분을 잘라 담아내는 것이 일종의 미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카이 작품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카이계"라고 불리는, 자기 주변의 소중한 인물이 세계의 존망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내용을 지닌 작품의 존재이다. 이러한 작품이 유행한 직접적 원인 중의 하나는 아니메 작품 "신세기 에반게리온". 세기말을 석권한 에바붐에,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영향을 받았고, 그 이후 안노 히데아키 연출의 대부분이 패러디처럼, 순수한 표면적 모방으로 아니메계를 중심으로 범람했던 시기가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한때 그러했던 크리에이터의 대표례이기도 했다.


그런 수법으로 그려지는건, 대부분 남녀의 애절한 연애와 향수다. 마찬가지로 시대의 강한 영향 하에 그려진 만화작품 "최종병기그녀"와 일본에서도 히트한 한류 드라마 "겨울 소나타"가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잔혹하고 더러운 세계 속에서 주인공들의 연애감정만이 순수한 것으로서 빛난다는 표현 방식은 가장 보수적인 부류의 너무나도 순진한 연애표현이다. 이런 남녀간의 변함없는 신뢰와 정절은 확실히 쇼와의 "너의 이름은"이 지니고 있는 고전적 관념과도 통한다. 하지만 신카이 작품을 "멜로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저항감이 느껴지는건 확실하다. 신카이 작품에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쓰라린 과거를 자꾸만 돌아본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그려지며, 그런 자신을 객관적인 시점으로 봄으로써, 일종의 자아도취적인 어두운 쾌감을 느낀다는 일그러인 콤플렉스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런 연애관은, 본래 비슷한 감성을 지닌 10대 관객에 가장 싱크로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연애관을 전달할 대상을, 감독 스스로가 개인적인 내성적 연출로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그럼 어째서 본작은 젊은 관객의 지지를 받게 되었나. 그 열쇠는 앞서 말한대로 본질적인 부분은 그대로지만, 표면적인 장식을 전면적으로 바꾸고, 음울한 이미지를 떨쳐버렸다는 것이다. 본작은 신카이 감독 최대규모의 기획으로서, 안도 마사시(安藤雅司), 다나카 마사요시(田中将賀)를 시작으로 하는 아니메 업계의 거물 스탭을 모아,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의 기본적 매력을 급격히 향상시켰다. 캐릭터는 생기넘치게 움직이고, 희로애락의 표정을 보여준다. 심지어 주제가도 흐르며, 그야말로 젊은 세대를 노린 상업 아니메 작품다운 오프닝까지 보여준다.


락밴드 RADWIMPS의 공훈은 너무나도 크다. 적극적이고 질주감 있는 기타 사운드와 보컬은, 소극적이고 완만했던 신카이 작품의 세계관을 표면적으로 중화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과거작 "초속 5센티미터"의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주제가가 너무나도 능변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악곡의 힘에 너무 기댄듯하다. 음악의 무드에 너무 빠진 나머지, 곡의 전개에 맞춰 장면을 배열하는 등, 음악이 영상을 돋보이게 하는게 아니라, 뮤직비디오처럼 영상이 음악에 종속된 것이다. 하지만 본작의 인기는, 오히려 이런 음악을 주체로 한 분위기 업에 있는 것도 확실하다.





이야기의 전반은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의 "전학생"처럼 고교생 남녀의 육체가 서로 뒤바뀌는 소동에서 시작되는, 가벼운 러브코미디풍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여성의 몸이 된 남고생이 무심코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반대로 히로인은 고간에 있는 것을 손으로 쥐어보는 묘사이다. 이는 "육체교환물"에서는 흔히 있는 장면이지만, 신카이 작품으로서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천박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교생이라면 틀림없이 그런 확인작업을 할 것이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반드시 넣어야하는 묘사이다. 이렇게 "가슴"이라는 작은 스케일을 현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후반에 일어나는 "천체현상"이라는 스펙타클에도 리얼리티가 부여되는 것이다.


이런 "비 신카이"적 요소가 본편곳곳에 뿌려짐으로 인해, 본작은 멜로 드라마로서의 구성요건을 만족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지금까지의 신카이 작품같은, 후반의 내성적 표현에도 몰입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신카이적 표현 모두가, 많은 관객들에게 평가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설정의 곳곳에서 파탄이 보인다. 애시당초 "육체교환"은 뭐였나. 무녀의 핏줄인 히로인은 신비적인 힘이 부여됐기때문에, 관객이 어느정도 이유를 보완할 수 있지만, 그녀가 빙의하는 대상이 어째서 그여야만 했는가. 철저한 오락물이라면 특히나 필요한, 기본적 부분의 논리적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이건 본작의 각본이 드라마성을 중심으로 고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동일본대지진이 모티프라고 추정되는 "재해"도 연애극의 배경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논리적 결여를 겨우 보완시켜주는 것이 "組紐(쿠미히모)"라고 하는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은 "인연(絆)"의 존재다. 이는 "붉은 끈"의 전설같은 운명론적 연애관계의 이미지. 내적 세계에 다이브하는 주인공이 보게 되는건 "쿠미히모(꼬은 끈)"이 "탯줄"이라는 모자의 연결로 변환되는 장면이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는것처럼, 이 작품에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이미 결정된 운명의 일부이다.


본작에는 "월간 무"라고 하는 실제 오컬트 잡지가 소도구로서 등장한다. 80년대 "무"의 펜팔상대 모집코너에서, 전세붐과 같은 것이 일어났던걸 알고 있는가. 거기에는 펜팔상대의 조건이 "전세에 인연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전세와 관련된 키워드와 이름을 서로 맞춰봄으로써 서로 스피리츄얼한 관계를 맺었다. 이런게 유행했던 배경에는 현실 인간관계의 피폐와, 이해를 뛰어넘은 확실한 인연으로 맺어지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뛰어넘은 "강한" 인간관계에의 갈망은, 현재에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다. 본작에서 주인공이 알바터의 매력적인 선배라고 하는 '타자'가 아니라 자신과 합일하는 영적인 존재를 찾는건, "논리를 뛰어넘어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다"라고 하는 바람의 발로이며, 이야말로 운명적인 "쿠미히모"의 정체이다. 하지만 이는 내적세계로의 퇴행원망이기도 하다.


신카이 작품의 표현, 그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현실이라는 역풍 속에서 때로는 후퇴하면서도 조금씩 전진하자는 의지를 그린 작품이었다. 반면 지금까지의 신카이 작품은 소극적으로 조금씩 계속 후퇴하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본작 "너의 이름은"의 인상은 조금 다르다. 이 작품에는 기세가 있다. 질주감도 있다. 하지만 향하는 곳은 여전히 후방이다. 신카이 감독은 이번에 주저없이 뒤를 돌아봄으로써, 역풍을 순풍으로 바꿔, 드디어 후방을 향해 엄청난 스피드로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 귀기서린 속도가 관객을 압도하고, 논리와 윤리를 억지로 눌러제꼈다. 이는 작가가 신념을 가지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감정을 전력으로 그린 결과임에 틀림없다.





덧글

  • 각시수련 2016/09/16 17:25 # 답글

    지난번 평이 한 관점으로 일점돌파한거라면 이건 총평으로서 가장 작품을 잘 짚은것 같다 ㅋ (뭐 작품분위기가 상쾌하고 남주가 주체적이라는건 공통된 의견이네)

    http://waterlotus.egloos.com/3551554

    요약하면

    1. 신카이 감독은 "저 바람 조금 울고있어" 같은 감성을 옮기는 감독.
    2. 원래 그런 감성은 사춘기 관객에게 가장 싱크로되기 쉬운데, 감독 특유의 내성적이고 후퇴적인, 칙칙한 표현법으로 작품을 그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10대 관객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3. 하지만 이번작품은 그런 칙칙한 표현을 버리고 최대한 밝게 표현.
    4. 캐릭터도 주체적으로 표현. 최고스탭으로 영상을 더 활기있게 만들었고, 특히 적극적이고 질주감 있는 주제가가 활기를 불어넣음.
    5. 하지만 주제가가 영상을 돋보이게 하는게 아니라, 뮤직비디오처럼 영상이 곡에 종속되는 주객전도까지 발생. 그래도 주제가는 분위기업에 최대의 효과를 발휘했다

    6. 젖만지고 좆만지는 섹드립은 지금까지 신카이 작품에서는 볼수 없는 천박함. 하지만 이렇게 10대 관객이 공감할 현실을 그림으로써 후반전개에도 리얼리티가 부여.
    7.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띄워놓으니까 후반에 전개되는 여전한 신카이의 후퇴감성, 내성적 표현에도 관객들이 몰입.

    8. 드라마를 메인으로 그리다보니 설정파탄이 발생. 왜 하필이면 남주였나?
    9. 하지만 인연이라는게 그걸 다 커버. 근데 주인공이 현실의 타자(오쿠데라 센빠이)보다는 자신과 합일하는 영적인 존재(미츠하), 인연의 상대를 찾아 헤매고 그녀와 맺어짐으로 인해 내적세계로 퇴행한 느낌도 있다. (또 과거의 신카이 작품처럼)

    10. 이번 작품도 여전히 신카이의 후퇴적 감성. 하지만 이전같이 내성적으로 소심하게 찔끔찔끔 뒤로 물러서는게 아니라, 작정하고 뒤로 전력질주한 작품. 때문에 이전 작품같은 칙칙함이 아니라 상쾌함이 느껴진 것이다

    이번에 신카이가 뒤로 전력질주했다는 표현에서 뿜음ㅋㅋㅋㅋㅋㅋㅋㅋ
  • 더스크 2016/09/16 16:20 # 답글

    뒤로 전력질줔ㅋㅋㅋ
  • ㅇㅇ 2016/09/16 16:23 # 삭제 답글

    감독답지 않은 활발한 분위기의 전개가 단점을 다 커버했다는거네요

    분위기를 띄워놓은 결과
    ->감성적인 표현이 먹혀들었다.
    ->설정파탄이 발생해도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납득하게 됨
    ->이전같이 후퇴를 감행해도 마이너스까지 가지 않고 어느정도 선에서 수습이 되었다

    다음 작도 똥꼬발랄하게 나가면 되겠군요......
  • 13 2016/09/16 16:38 # 삭제 답글

    역시 커플이 박살 안나서 흥행했다고 생각할 수 밖엔 없어!
  • ㅇㅇ 2016/09/16 16:50 # 삭제 답글

    뒤로 전력질줔ㅋㅋㅋ
  • 잠본이 2016/09/16 22:31 # 답글

    >하지만 그걸 반성하기는 커녕, 그때의 감각을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옮기는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다.

    격하게 와닿는 평가로군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듀얼콜렉터 2016/09/17 04:10 # 답글

    신카이 감독이 몇달전 미국 애니메이션 이벤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때 그 행사에 있었는데 못간게 아쉽네요 >_<
  • 행인 2016/09/21 01:55 #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평론가들은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말을 만들어내는데 치중하는 것 같네요. 물론 그들의 말이 어느정도 일리는 있지만요.
    과연 관객을 압도하는지 까진 모르겠지만, 어찌됬든 감성을 자극하는 훌륭한 영화였고, 이글도 좋은 비평답게 대부분 수긍이 가네요.
  • KITE 2016/10/14 02:20 # 삭제 답글

    이게 과연 신카이 마코토 작품인지 신카이 마코토는 그냥 배경 담당자인 P.A.Works 작품인지..
    밝고 조금은 한국 아침 드라마 같으면서 인물묘사나 드라마적 연출에 공을 드리는 전형적인 PAWorks 작품으로 보입니다만..
    결국 기존의 PAWorks 작품들이 일반 대중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오타쿠들의 외면 으로 일반 대중에게는
    접근도 못하고 버려지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와중에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을 빌려서 먼저 오타쿠들에게 다가가고 그 다음에 일반 대중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결과가 아닐런지..
    이런 경우는 PD 가 누구냐에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데 PD 가 상당한 실력자라고 봅니다.
    아마 신카이 마코토는 PAWorks 랑 떨어지는 순간 이전으로 돌아가 버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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