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단간론파 키리기리 3권 1장 소년과 백작 完 도서




단간론파 키리기리 3권

글 키타야마 타케쿠니 (北山 猛邦)
그림 코마츠자키 루이 (小松崎 類)


1장 소년과 백작

새로운 해의 시작. 그.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들이 직면한건 단순한 달력의 연초라기보다는 뭔가 커다란 시대의 끝과 시작일지도 모른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신학기가 시작됐다. 반 친구들의 졸린듯한 얼굴이 따사로운 햇살의 창가에 늘어져있다. 수업종이 울려도 교실은 아직 느슨한 분위기다. 칠판 위에 선생님이 흩날리는 분필소리만이 성가시게 들렸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중학 클래스의 교실을 둘러보았다. 키리기리 쿄코의 자리는 비어있다. 옆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지만, 역시 그녀는 결석이라고 한다. 그날 이후로 그녀가 사라졌다. 노먼즈 호텔에서 행해진 흑의 도전(듀얼 느와르)을 물리치고, 기묘한 결말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 날. 둘이 손을 잡고 떨면서 도망쳐나왔던 그 장소.

지금 생각하면 그 후에 그녀와 헤어진게 잘못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그녀의 손을 놓지 말아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자택으로 향하는걸 말리지 않았다.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뒤 나는 기숙사의 자실로 돌아갔다. 그 후 일주일 동안은 살인사건과, 흑의 도전과는 인연이 없는 매일이었다. 하지만 숙제를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죽어간 사람들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직도 내 마음은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것일까. 지금의 나에겐, 아무일도 없는 평화로운 시간이야말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키리기리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집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질 않았다. 그녀는커녕 그녀의 조부도, 같이 살고 있다는 도우미도 받질 않았다. 언제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인터폰을 눌러도 반응은 없고, 감시 카메라만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높은 담장너머로 보이는 저택은 불빛도 없고, 사람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키리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닐까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는 슬슬 그렇게 확신했다. 마치 이 세상에서 키리기리 쿄코가 사라진 것 같았다. 설마 드디어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가 움직인걸지도 모른다. 조직의 보스인 신센 미카도(新仙帝)와 탐정인 키리기리의 조부는 뭔가 인연이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키리기리 쿄코는 그 둘의 다툼에 휘말려버린게 아닐까

만약 그녀가 조직에 유괴되었다고 한다면, 탐정도서관분류(DSC) 88(유괴사건전문) 넘버에 해당하는 탐정, 내 차례이다. 반드시 그녀를 구출하겠어. 하지만 정말 키리기리가 유괴되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애시당초 그녀가 간단히 적에게 붙잡혔을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대대로 탐정업을 이어온 키리기리 가문의 외동딸, 그녀의 놀랄만한 재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키리기리 쿄코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사라진 사람을 찾는건 탐정의 일이다. 나는 그녀의 족적을 쫓기위해, 탐정도서관으로 향했다. 혹시나 메시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탐정도서관에는 대략 65500명의 탐정 정보파일이 소장되어있다. 파일은 일반에도 공개되어, 누구든지 자유롭게 열람할수있다. 탐정에 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먼저 이곳을 방문하는게 기본이다. "탐정도서관"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낡은 문을 지났다. 역사가 느겨지는 서양식 입구를 지나면, 그곳은 탐정숲의 입구이다. 나는 지금까지 몇번이고 이곳을 방문했다. 얼마전에도 키리기리와 같이 왔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탐정도서관을 둘러보니 신비적인 분위기 뿐만 아니라 끝을 알수없는 어둠이 함께하는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흑의 도전을 두번이고 체험한 탓이다. 탐정도서관의 배후에는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기분나쁜 검은 그림자가 꿈틀거린다고 생각된다.

겉으로 탐정도서관은 어느 조직과도 관계를 갖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진짜일까? 애시당초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를 만든 신센 미카도는 15년전 탐정 도서관 창립에 관여된 멤버중의 한명이다. 또한 흑의 도전은 DSC의 랭크를 참고해, 소환할 탐정을 선택한다. 게다가 DSC에 속한 최고랭크 000넘버의 탐정들이 신센과 손을 잡았다. 이만큼의 상황증거가 모였다면 탐정도서관과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가 뒤에서 손을 잡고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지금 혼자서 적의 본거지에 와버린게 된다. 괜찮아, 무섭지않아. 아니 무섭지 않을리 없다. 그럼에도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가슴을 펴고 카운터로 향한다. 그래도 얼굴색이 안좋은건 감출수 없겠지만.

"제 앞으로 온 메시지는 없나요?"

백발섞인 초로의 직원에게 탐정도서관등록카드를 제시한다. 설마 그도 범죄조직의 일원일까. 직원은 카드의 내이름을 확인하고 금방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럼… 카드 갱신을 부탁드립니다"

직원은 완만한 동작으로 컴퓨터 앞으로 이동, 앞에있는 단말기에 내 카드를 집어넣었다

"갱신은 없습니다"

"에, 정말인가요?"

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카드를 돌려줬다. 확실히 지난번의 흑의 도전에서 나는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랭크 한단계정도는 올라갔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카운터를 떠나, 서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정연히 나열된 책장에는 무수한 파일리 늘어져있다. 인기척은 없고, 조용히 내 발소리만이 높은 천정에 반사된다. 나는 책장사이를 지나, 넘버9의 책장까지 이동했다.

키리기리 쿄코의파일을 발견해 선반에서 꺼냈다. 열어보니 안은 전에 봤을때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노먼즈 호텔의 일은 일절언급되어있지 않다. 지난 사건에서 키리기리는 탐정역으로 선발된게 아니기에, 기록으로서 남겨지지 않을걸까. 아니, 하지만 시리우스 천문대 사건에서는 제대로 파일화 되었어. 그때도 키리기리는 탐정역이 아니었는데. 설마 노먼즈 호텔사건은 공적으로 사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으로서 남겨지지 않은게 아닐까. 실제로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사건이 보도된걸 본적이 없었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나는 900 넘버의 책장으로 향했다. 나나무라 스이세이(七村彗星)의 파일을 찾았다. 나나무라는 노먼즈 호텔사건에 소환된 더블제로 클래스의 탐정이다. 그의 눈부신 업적이 늘어져있는 파일에, 그의 결말을 기록한 페이지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사망한 탐정은 프로필란에 몰년이 기록되는데, 그 기록도 없다. 하지만 나나무라가 죽은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권총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쐈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노먼즈 호텔과 함께, 접.혀.사.라.졌.다. 신센 미카도가 내 눈앞에서 손수건을 접자, 동시에 눈앞에 보이던 풍경이 전부 손수건과 함께 접혀 사라져버렸다. 마치 꿈을 꾸고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키리기리는 곧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유이 언니의 시야는 손수건에 가려져 볼수없었지만, 제 눈에는 호텔이 주위의 지면과 함께 뒤집혀 사라지는게 보였어요"

"뒤집어졌다고?"

나는 호텔이 있던 장소로 돌아가, 호텔을 둘러쌌던 담장바닥과 지면사이에 조그마한 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말하길, 원래 호텔부지 전체가 두꺼운 판위에 있었고, 그판의 중앙을 관통하는 회전축을 중심으로 180도 회전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변하는 트릭이라고 한다. 얼핏봐서는 눈치채지 못하겠끔 지면의 틈새는 도랑 같은 경계선으로 위장했다.

"호텔내에서 밀실살인사건이 일어났을때, 유이 언니는 벽이 회전하는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회전하는건 벽이 아니라, 호텔전체였네요"

신센 미카도가 내 눈앞에서 손수건을 펼친건 일시적으로 그 트릭을 감추기위함이었다. 마술사와 일루셔니스트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소리하나 내지 않고 그만한 질량을 스무스하게 회전시키기 위해선 상당한 장치가 필요하죠. 어쩌면 흑의 도전과 관련된 건물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단숨에 모습을 감출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에는 숨겼다가, 게임할때만 드러내는"

"그럼 주위의 풍경도 같이 사라진건 어떻게 설명할거야?"

"실제로 접혀 사라진거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이 그림 혹은 페이퍼 크래프트 같은걸로, 언제든지 회수하기 가능하게 그렇게 한거겠지요. 흑의 도전은 일종의 쇼니까 배경까지 포함한 모든게 무대장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키리기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좀처럼 믿기힘들었다.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는 여러장소에 여러 범죄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들 전부에 대규모 장치와 배경을 세팅해놨다는 말인가. 돈이 너무나 많이 들지 않을까. 그리고 금전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문제도 있다. 무대를 준비하고 철수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인력이 필요하다. 관련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밀은 밖으로 새기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의 도전"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행해졌다면… 그들은 철저하게 통솔된 집단일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사람이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에 관여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모를뿐이지, 거리에게 스쳐지나간 사람중의 여러명이, 이미 그들측의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수 없는 오한이 덮쳐왔다. 그들이 떠나가면서 보여준건, 그 압도적인 자금력과 조직력이던 것이다. 혹은 농.담.같.은.악.몽.을 실현할수 있는 실행력인가. 그때 좀 더 자세히 조사했다면 적어도 나나무라의 시체정도는 발견할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한 사건이 공연하게 다뤄지는 일은 없을것이다.

나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나나무라의 파일을 선반에 되돌렸다. 어쩌면 이 책장에 늘어져있는 탐정중의 몇명은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협력자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멀쩡한 탐정이 몇명이나 있을것인가. 존경할만한 트리플 제로클래스의 탐정조차, 적측의 인간인데.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지금 보고 있는 풍경조차 가짜일지도 모른다. 내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인 키리기리 쿄코가 없는 지금, 도대체 무엇에 기대고 거짓과 진짜를 구분해야할까.

결국 나는 탐정도서관에서 키리기리 쿄코의 행방과 관련된 단서를 찾지 못했다. 폐관시간이 다가왔기에 방의 출입구로 서둘렀다. 기분탓인지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출구 위에 설치된 램프풍의 조명이 어렴풋이 빛나기 시작했다. 엷은 빛속에서 문을 지나나가려는 그 순간. 정면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내 옆을 미끄러지듯이 지나 방안으로 들어갔다. 스쳐지나가는 순간,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향수같은 화학적 냄새가 아니라, 아침에 핀 꽃의 향기. 어딘가 그립고, 사랑스러운 향기.

산뜩한 머리색의 소년이었다. 어른스러운 쓰리피스 수트에, 벗은 윗옷을 팔에 걸치고, 조끼입은 모습으로 발소리도 내지 않고 걸었다. 그의 얼굴을 본건 스쳐지나간 한순간 뿐이었지만. 나는 생각치도 않게 숨을 삼켰다. 어디선가 그를 본것 같았다. 내 기억속의 누군가가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누군가. 예를 들면 종교화에 그려진 천사들. 예를들면 이야기속에서 빛과 장난치는 요정들. 어딘가에서 본듯한, 하지만 환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 같은 미소년. 나는 뒤돌아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하지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남아있는 향기만이 그의 행방을 이야기했다. 유령이나 환상을 본듯한 기분이다. 그 아이도 탐정을 필요로 하는걸까. 왠지모르게 신경쓰이면서도, 나는 더이상 그를 쫓지 않고 탐정도서관을 떠났다.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미소년 보다는 키리기리의 행방이 더 걱정되었다.


다음날도 키리기리는 등교하지 않았다. 담임교사와 시스터에게 물어도 알수없었다. 어른들은 아직, 키리기리 쿄코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키리기리가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 혼자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와 싸울수 있을가. 아니면 어둠의 세계에서 그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척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야하나? 그렇게 할수 있을리 없다. 악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를 모른채하는건 악에 가담하는것과 다를 바 없다. 키리기리 쿄코가 돌아올때까지 나 혼자서라도 싸운다. 설령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날 나는 다시 탐정도서관을 찾았다. 다시한번 메시지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희망은 엷지만 행동하는것에 의미가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조용히 눈내리는 가운데 탐정도서관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낡은 문을 열고, 건물안에 들어섰음에도 아직 숨은 하얗다. 눈내려서 그런지 여느때보다 춥고 조용하게 느껴졌다. 입구에 있는 우산꽂이가 빈걸보니 손님은 아무도 없나. 카운터에서 메시지의 유무를 물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찾기 전문의 탐정에게 의뢰해야 되나. 하지만 그렇게부른 탐정이 적측의 인간일수도 있다. 경찰에 상담할까? 과연 경찰이 도움이 될까. 과거의 경험상 경찰은 믿을 수 없다. 매우 고독한 기분이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수 없다. 거창한 표현이 아니라, 내 눈앞에 비치는 세계는 수개월전과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흑의 도전에 관여하기 전까지의 나에게 세계는 좀 더 심플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석양이 비치는 길가에 깔린 빌딩의 그림자처럼 안을 들여다보면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깊은 어둠이 숨어있는것처럼 느껴진다. 이럴때 곁에 키리기리 쿄코가 있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키리기리쨩 어디로 간거야? 날두고.

정처없이 서가 사이를 걷고 있을때, 수 블럭 앞에 사람그림자가 지나갔다. 지금건 뭐지? 왠지모르게 신경쓰여, 나는 그림자를 쫓듯이 서가의 모서리를 돌았다. 그러자 20미터 정도 앞에, 몇일전 보았던 조끼입은 미소년이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는 수트의 겉옷을 오른팔에 걸치고, 마치 내가 쫓아오는걸 기다렸다는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서있다. 키는 키리기리 쿄코보다 조금 작은 정도. 연령은… 잘모르겠다. 그저 어리고 미성숙하다는 것만은 알겠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웃어보였다. 그 미소는 소년같이 순수했고, 소녀같이 매력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도서관의 요정. 새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 가녀린 몸. 설마 여자애인가? 아냐 성이 미분화한 아이. 그는 지금 소년도 소녀도 아닌 그야말로 요정이라고 부를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조금 긴 머리카락과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보다, 그의 신비스러움을 보다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곧장 서가에 몸을 숨겼다. 나는 그의 잔상을 쫓듯이 서둘러 책장 너머로 달렸다. 소년은 수십미터 앞에서 다시 날기다리는 듯이 서있었다. 그리고 다시 책장사이로 몸을 숨겼다. 술래잡기하자는건가?

"잠깐, 너!"

나는 말을 걸면서, 그를 쫓았다. 다음 책장 모서리를 돌아서자 소년의 모습은 없었다. 그 대신 안쪽에 작은 철문이 있었다. 저 문너머로 도망친건가. 애시당초 여기에 이런 문이 있엇나. 마치 이상한 나라로의 입구다. 나는 조용히 문에 다가가 차가운 손잡이를 쥐었다. 조심스레 열었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가 몰아치며 눈이 내 머리카락에 얽혀왔다. 밖이야. 돌담의 작은 길이, 울타리의 다리 너머로 이어져있다. 뒷문인가. 이런곳에 출입구가 있다니 지금까지 몰랐다.

소년은 없었다. 분명 다리 넘어로 숨었을 것이다. 나는 눈내리는 곳으로 나와, 다리를 건넜다. 그 너머에는 주차장이 있었다. 높은 생울타리로 둘러싸였고, 대략 자동차 2대 정도 분의 장소가 있었다. 지금 그곳에는 흰눈속에 검은색의 대조를 강조하는 긴 리무진이 세워져 있었다. 차 옆에는 방금전의 소년이 서있다. 그는 나를 초대하듯이 리무진의 문을 열었다.

"어떻게된거지…? 나보고 타라는거야?"

그는 말없이 끄덕였다.

"웃기지마" 나는 움츠리며 말했다. "도착지는 어디냐? 두번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곳이지?"

소년은 아무대답도 하지 않는다. 말을 할수없는걸까, 아니면 내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걸까. 그는 호텔맨처럼, 그저 차문을 열고 기다릴뿐. 도대체 누가 어떤목적으로 날 데려가려고 하는걸까. 유괴치고는 너무 정중하다. 하지만 파티의 초대로서는 너무도 수상했다. 이런 뻔한 함정에 걸리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내게는 쿨하게 뒤돌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설마 키리기리 쿄코도 같은 방법으로 어딘가에 끌려간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일부러 넘어가주는것도 한 방법. 도착지는 분명 같은것이다. 어쩌면 도착한 곳에서 키리기리와 재회할지도 몰라.

"알았어. 탈게"

나는 용기를 쥐어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조끼입은 소년은 미소지으면서 날 에스코트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나보다 작은 아이에게 이렇게 당하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의 손을 잡고 몸을숙여 어두운 차내로 들어섰다. 문은 곧장 닫겼다. 그소리에 조금 놀라 벌떡일어날번했다. 희미한 룸램프의 조명 아래, 대면식의 시트에 건너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본적있는 얼굴의 남자. 눈치챈순간 난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몸은 반사적으로 문을 여는 레버를 찾고있었다. 도망쳐야돼!

"자네에게 위해를 가할생각은 없네"

남성적인 굵고 무거운 목소리.

"내게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자네는 이미 죽었지. 알잖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움츠리며, 끄덕끄덕 몇번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스레한 차내에서 보인 그것은 입주위에 수염이 있고, 긴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야성미 있는 남자의 얼굴. 열정이 담겨있는것처럼 반짝이는 눈은 좌우지간 인상적이다. 반면에 오랜기간 빛을 쬐지 않은것같은 피부색과, 움푹히 들어간듯한 뺨 등 건강하지 않은 일면도 보였다. 차분한 분위기에 어른의 여유가 느껴졌다.

"날 알고있지?"

그는 기침을 하면서, 검은 망토같은 외투 안쪽에서 탐정도서관등록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선뜻 나에게 내밀었다.

류조지 겟카 DSC넘버 000

처음보는 세개의 제로. 탐정으로서 모든 분야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증거. 그야말로 탐정도서관의 정점에 군림하는 사람중의 한명,『안락의자백작』 류조지 겟카(龍造寺 月下)이다. 나는 정중하게 카드를 류조지에게 돌려줬다. 류조지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그의 손가락은 마른 가지처럼 가늘게 말라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기침을 하고, 사이드 테이블의 잔에 위스키를 따르고 한모금 마셨다. 마치 그것이 약인것처럼. 동시에 차가 움직였다. 어째서 그가 이곳에? 날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차의 속도가 올라감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도 고속으로 의문이 맴돌았다. 이동하는 밀실 속에서 나는 류조지와 단둘이 마주보고 있다. 방금전의 소년은 건너편, 조수석에 앉은 모양. 시트는 푹신푹신해 앉는 느낌이 좋아, 공포심으로 굳어버린 몸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류조지 겟카와의 대면은 더없는 영광이었을텐데. 운명은 어디서 비뚫어진걸까

"자네 몇살이지"

"16세입니다"

"나쁘지 않은 숫자야. 열여섯해가 만든건, 망설임와 희망"

류조지는 테이블 위의 유리잔에 시선을 떨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댄디한 목소리에 일단 귀는 편안했다.

"주저하고 있는 모양이야, 뭐라도 좋네. 질문해보게, 대답해주지"

"이 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거죠"

"어린양들이 구원을 바라는 장소"

"어린양…?"

"어둠속에서 이정표를 잃어버린 그들은 수천의 무리를 지어, 나의 빛을 바라고 있네."

스무고개라도 할생각인가

"설마… 류조지씨의 탐정사무소인가요?"

"정답이야. 이제 곧 내 일터에 도착하네. 자네를 꼭 초대하고 싶네"

류조지는 트리플제로 클래스의 3명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탐정사무소를 보유하고, 일반손님의 의뢰도 받고 있다. 그가 하루에 처리하는 일은, 사건수로서는 100건 혹은 200건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결하기 때문에, 안락의자탐정에서 따와 안락의자백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백작은 아마도 그의 풍모에서 비롯되었으리

"어째서 저를?"

"자네가 참가한 흑의 도전을 봤지. 자네의 무능함에 대한 평판은 자자하더군, 하지만 난 자네를 비웃을수 없었네. 어째선지 아나?"

류조지는 답을 기다리듯이 입을 닫았다. 내가 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과.거.의.나.와.닮.았.기.때.문.이.지. 더욱이 자네의 한결같음에는 존경을 표하네."

류조지는 기묘한 말을 했다. 그런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왠지 나를 놀리는게 아닐까 생각됐다.

"무슨 의미죠"

다소 반항적이게 말했다.

"이대로 자네를 잃는건 아깝다는 의미야"

"잃는다?"

"자네는 자신이 죽는 순간을 상상해볹거이 있나. 혹은 유서를 써본적은 있고?"

"네? 네?"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서운 질문이었다.

"저기…그게 무슨 소린지…"

"실례, 시간이 됐어"

류조지는 갑자기 말을 막듯이 한손을 올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에 걸기 시작했다. 전화로 상대를 연결하는 동안, 운전석으로 말을 걸었다.

"법정속도를 이대로 유지해라. 1킬로도 오버하지마"

도대체 뭐가 시작되는걸까. 다음에 류조지는 휴대전화를 향해 지시했다.

"60초후, 4호선의 A포인트부터 C포인트까지 신호를 빨강으로 바꾸게."

이어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들의 목적은 버스잭 테러행위가 아니네. 진짜 목적은 승객의 금품을 훔치는것. 그 버스에는 현금 5천만이 든 수트케이스를 지닌 노인과, 가방에 2억엔 상당의 액세서리가 있는 부인이 타고있네. 아니, 우연이 아니야, 이것도 범인들의 계획이야. 승객들은 버스잭의 혼란속에서 수하물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지. 이미 금품은 도둑맞아, 가짜 수트케이스와 가방으로 바뀌었지. 금품은 도로상의 다른 동료에게 건네지네. 동료는 오픈카를 타고 있을거야. 이 겨울에 천정을 전부열고 달리고 있어. 교차점에서 버스와 오픈카가 스쳐지나갈때, 버스의 창문으로 오픈카로 향해 금품을 내던질 계획이야."

류조지의 말로 나는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현재진행형으로 버스잭사건이 발생했고, 류조지는 그 해결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것이다.

"다음 교차로의 중간에 차를 멈춰라"

류조지는 운전석을 향해 지지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차는 이제 막 교차로로 들어섰다. 하지만 진행방향의 신호는 적색. 우리들 앞에 차는 없었다.

"2초…1초…제로"

류조지의 카운트 다운이 끝난 순간, 진행방향의 신호가 청색으로 바뀌었다. 차는 속도를 줄이는 일없이, 그대로 교차로로 들어섰다. 그때 교차로의 좌측에서 맹렬한 속도로 오픈카가 달려오고 있었다. 류조지가 말한대로 눈내리는 가운데 덮개를 열고 있다. 한편 우측에서는 전광표시로 SOS의 문자를 띄운 노선버스. 여기서 스쳐지나갈 생각이야! 둘다 신호가 바뀐 이 타이밍에 억지로 교차로 돌입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들이 타고 있는 리무진이 도로를 가로막듯이 교차로의 중앙에 급브레이크를 하고 멈춰섰다. 차체가 길었기에, 리무진은 양차선을 가로막았다. 좌우로부터 오픈카와 버스가 달려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부딪혀!"

나는 눈을 감으며, 몸을 움츠렸다. 급브레이크의 소리가 귀에 꽂혔다. 순간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아직 유서를 쓰지 않은걸 후회했다. 하지만 충격을 발생하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리무진의 바로 옆, 좌측에는 오픈카, 우측에는 버스가 코앞까지 부딪힐듯한 위치에서 멈췄다. 사이렌이 울리고 경찰차가 둘러싼다. 오픈카와 버스는 후진해 도망치려 했으나 곧장 경찰차에 둘러싸였다. 기동대가 범인을 급습하고, 인질은 무사히 해방됐다. 영화에서만 봤던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 대단해…"

나는 창밖의 광경에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어느샌가 사건에 휘말려, 어느샌가 사건은 종결됐다. 평범한 사람이 명탐정에 휘둘리는건 언제나의 일이지만, 류조지 겟카는 격이 달랐다. 수라장이 대충 정리되고, 경찰관들이 이쪽을 향해 경례를 한다. 이를 사건종결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리무진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죽는줄 알았네…"

"안심하게 내 해결편에 사망자는 없어"

류조지는 휴대전화를 한손에 들고, 심하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 실례. 이쪽 이야기야. 아마도 범인은 그 창고채로 트레일러에 싣고 이동한걸세. 이동한 곳에서 창고를 열고, 안에서 피해자를 살해. 그후, 원래 장소로 돌아와…"

그는 이미 다른사건의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이게 안락의자백작 류조지 겟카인가… 패러랠 싱킹, 멀티 태스크의 천재. 탐정도서관에 등록된 탐정중에서도 가장 사건 해결수가 많은 남자.

"그럼 달리 나에게 묻고 싶은건?"

류조지가 마법처럼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무릎위에 손깍지를 끼고 물었다.

"키리기리쨩을 데려간건 당신들인가요?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죠?"

"안타깝지만 그녀의 소재는 파악하지 못했네. 이건 진짜야. 우리들이 개인의 행방을 놓치는건 본래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발견되지 않는걸 보니, 그녀는 탐정스킬을 구사해, 스스로 행방을 감춘거겠지"

"키리기리쨩이 스스로…?"

"짚히는바는 없나? 우리들로부터 도망치는건 시간낭비니까 그만두는게 좋을거라고 충고해주게나"

아무래도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도 키리기리를 찾고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붙잡히지 않았다. 그사실을 안것만으로도 여기에 온 보람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지만. 어깨를 떨구고 시트에 몸을 맡겼다.

"걱정할 필요는 없네"

류조지는 따뜻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방금전에 말했듯이 나는 자네에게 위해를 가할생각은 없어. 동화속의 공주같이 자네를 초대해, 공주처럼 자네를 돌려보낼생각이야."

"목적이 뭐죠?"

"개인적인 이유야"

"개인적……?"

"그래, 자네가 지금 여기에 있는건,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의사와 무관하네. 나의 독단에 의한 선.수.지"

점점 더 의미를 알수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내부기밀인데… 이미 위원회는 자네를 탐정역으로 하는 다음 『흑의 도전』을 준비했네"

"에…"

충격의 사실이었지만, 제대로 놀라지도 못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급전개의 연속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자네에의 도전장은 내가 가지고 있지. 그걸 건네주는건 간단하지만, 자네를 맘에 들어하고 있는 나로서는 자네를 잃고 싶지가 않아."

달콤한 목소리에 취할것 같았다. 가능하면 그런 말은 다른사람한테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기를 하기로 했지. 어디까지나 도박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지만, 운명에서 답을 찾아보고 싶었네."

류조지는 눈내리는 창을 잠시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되돌렸다.

"사미다레 유이, 나와 게임을 하지 않겠나?"

게임? 또 이상한 어른들이 생각한 게임을 해야하는건가

"이게임에 어려운 룰은 없네. 나는 지금부터 자네에게 두번 선택을 제안하겠네. 자네는 자신이 믿는 답을 고르기만 하면 돼. 단 내 물음의 내용은 두번다 똑같네."

"선택지를 고르기만 하면 되나요?"

"그렇게 이해해도 상관없어. 해도 되겠나?"

나는 잘 알지도 모른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간단한 게임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럼 묻지"

류조지는 외투안쪽에서 새까만 봉투를 꺼냈다. 저 꺼림찍한 봉투. 범죄피해자구제 위원회의 봉랍이, 방금전에 찍힌것처럼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그 봉투와는 별개로 그는 또다른 봉투를 꺼냈다. 이번애는 새하얀 봉투. 하지만 봉랍은 같은 마크다. 류조지는 왼손에 검은 봉투, 오른손에 흰 봉투를 들고, 내눈앞에 내밀었다.

"검은 봉투는 잘 알듯이 도전장이네. 위원회가 준비했지. 소환되는 탐정은 사미다레 유이, 자네야. 이걸 개봉하면 흑의 도전이 시작되네."

주저하는 나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류조지는 말을 이었다.

"하얀봉투는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추천장이다. 통상, 위원회에 들어오기 위해선 간부의 추천장이 필요하지. 이건 내가 자네를 위해 서명한걸세."

류조지는 시험하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제서야 게임의 의도를 이해했다. 흑인가, 백인가. 그들에 따를것인가, 거스를것인가.

"제3의 선택으로서 둘다 받지않는 길도 있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는 그 선택지만큼은 고르지 않을게지. 자, 시간이 됐네. 선택하게나"

차가 적신호에서 멈췄다. 동시에 차내의 시간도 멈췄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기까지 나는 꼼짝할수 없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방금전에 말했듯이 선택의 기회는 2번 있네. 결론은 2번째 내면돼."

"그렇다면 첫번째 선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 물음에 류조지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선택의 타임리밋을 재촉하는 듯이 두개의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확실히 말해, 고민할만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망설임을 감출수 없었던건, 류조지가 나를 위원회에 초대하려고 했던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대단한 실적도 없는 나를 동료로 삼는데 무슨 메리트가 있을까.

"답은 나왔나?"

"네"

답은 나와있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검은 봉투를 가리켰다. 누가 범죄조직의 동료가 될까보냐.

"좋아"

류조지는 담담한 웃음을 띠며, 두개의 봉투를 수트속에 넣었다.

"편하게 있게"

"이걸로 끝인가요?"

"다음 선택은 나중에 하지. 이제 곧 내 일터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따라와주겠나?"

"…네"

무서워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적의 성내를 시찰할수 있는 찬스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지 않으면 손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도시의 빌딩숲에서, 눈이 쌓인 받과 산림으로 바뀌어갔다.

"내가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에 들어간건 6년전"

류조지는 갑자기 독백을 시작했다.

"그 이후, 나는 흑의 도전의 트릭을 계속 작성해왔네. 대부분의 경우, 흑의도전은 몇명의 크리에이터와 코디네이터에 의해 만들어지고, 최종적으로 신센 미카도가 감독하는걸로 돼있네."

마치 잡담이라도 하는듯이 아무렇지 않게 폭로는 이어졌다. 나에게 비밀이 알려져도 자신의 지위에는 타격이 없다는 자신이 있어서 그런걸까. 신에 가까운 명탐정들의 타락. 다시금 본인의 입으로 그 사실을 듣는건 충격이었다.

"자네는 아마도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를 단순한 범죄조직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별난 취미의 부자들을 상대로 살인쇼를 제공하는 어둠의 조직이라고."

"아닌가요?"

"그건 어디까지나 조직을 운영하기위한 수금 시스템에 지나지 않아. 적어도 거기에 이념은 없지. 위원회가 그정도의 조직이었다면, 나는 협력하지 않았지."

이념인가… 그들에게도 그들나름의 정의가 있다는걸까. 차가 벽돌다리를 건너, 마른나무의 가로수길을 지나간다.

"여기부터는 사유지네"

류조지는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자네에겐 들리는가? 탐정을 필요로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마을이 있는것도 아닌데, 가로수길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서있었다. 가족과, 연인들. 길가에 있는 아이들이 어째선지 차를 보고 손을 흔들고, 차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의 속도에는 따라오지 못하고, 점점 거리가 벌어져, 끝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차가 나갈수록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만갔다. 무슨 행렬이지? 차는 가로수길을 지나, 다시 벽돌다리를 건넜다. 정면에는 분수와 장미정원이 있다. 겨울이라 쓸쓸한 풍경이었지만, 아름다운 인상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다. 행렬은 분수가 있는 정원을 우회해, 그 너머까지 이어져있다. 차는 행렬을 따라가듯이 점점 안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류조지의 탐정사무소가 나타났다. 그것은 성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건물이었다. 높은 담장의 주위에 파여져있는 물없는 해자. 고풍적인 돌다리가 걸쳐있다. 그 너머에 보이는 성문과 원형탑에 늘어져있는 무수한 창문, 옥상에 설치돼있는 톱니모양의 흉벽. 마치 중세 유럽의 성곽, 그 자체였다. 사유지에 들어와서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풍경이 이어졌다.

대리석 출입구 앞에 차는 멈췄다. 조끼입은 소년이 밖에서 문을 열었다. 나는 내밀어진 그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왔다. 출입구까지 이어진 행렬이 조금 흐트러져, 자를 둘러싸고 사람의 둘레가 생겼다.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다소 거리를 두고 차를 바라보고 있다. 마침내 리무진에서 자동적인 트랩이 내려오고, 류조지가 전동차의자로 내려왔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환성과 같은 밝은 목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류조지 선생님, 다녀오셨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류조지 선생님"

"얼마전에는 감사했습니다"

다들 류조지를 환영하고 있다. 마치 아이돌이나 영화스타가 등장한것 같은 술렁거림이었다. 류조지가 손을 들어, 말없이 그들을 진정시키는 포즈를 취했다. 조끼입은 소년이 곧장 류조지의 뒤로 가, 건물안을 향해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그뒤를 따라갔다. 입구의 문이 자동적으로 열렸다. 성내 1층은 호텔 로비처럼 되어있고, 프론트에 수트를 입은 아이들이 수명 서있다. 푹신푹신한 융단에 대합실용 소파. 놀랍게도 입구에서 정면 엘리베이터까지, 종업원으로 보이는 제복의 소년들이 늘어서 류조지를 맞이했다.

"다같이…"

"류조지 선생님 다녀오셨습니까"

아이들은 다같이 맞춰 인사를 한다. 인사의 목소리가 다소 통일되지 않은게, 아이들다웠다. 밖에서부터 이어지는 일반손님의 행렬은 로비를 지나 안쪽 문까지 이어져있다. 그들은 류조지를 기대고 찾아온 어린양들이겠지. 아마도 그 안쪽 방에서, 사건의 상담을 받고, 고민을 털어놓는것일게다. 조끼입은 소년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금방 문이 열리고, 그는 휠체어를 회전시켜 탔다.

"자네도 타게"

류조지의 말을 듣고, 나도 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직전, 대걸레와 양동이를 든 작업복의 소년 2명이 서둘러 탔다.

"아, 류조지 선생님. 다녀오셨습니까"

"다녀오셨습니까"

두 아이도 목소리를 맞춰 인사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기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청소는 끝났니?"

류조지는 소년들에게 물었다.

"네, 창과 바닥을 번쩍번쩍하게 닦았어요."

"번쩍번쩍하게 닦았어요"

"좋아"

류조지의 말에, 아이들은 득의양양해했다. 아이들은 3층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는 더욱 상승해, 우리들은 5층에서 내렸다. 붉은 융단의 복도가, 정면에 일직선으로 계속 뻗어있다. 조끼입은 소년은 천천히 류조지의 휠체어를 밀기싲가했다.

"자네는 이제 무슨 쇼지?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류조지는 내 마음을 꿰뚫어본것처럼 말했다.

"혹은 컬트 교단에라도 발을 들인 기분인가. 하지만 이건 한점 거짓없는 내 일상이네"

류조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도움을 찾아 모인 사람들. 그를 신뢰하고 그의 곁에서 일하는 아이들. 이것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구해온 명탐정(히어로)의 일상풍경. 그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게 이것일까. 성공한 탐정의 의자에서 보이는 세계. 그리고 그가 일궈낸 평화의 네버랜드. 긴 복도 끝에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 있다. 우리들이 다가가자, 문은 센서로 자동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그곳은 네버랜드의 푸르른 세계와는 대조적인, 영웅의 고독한 전장이었다. 규칙없이 쌓인 파일과 서류의 산. 마구 늘어져있는 자료책.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메모와 사진. 그 방은 대략 30량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곳곳에 쌓인 책이 산맥을 이루었고, 산란한 종이다발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대자연의 정원이다. 아니면 이 방은 류조지의 뇌내를 그대로 구현화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방에 들어서자, 류조지는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조작해, 책상으로 이동해 들어갔다. 지금까지 휠체어를 밀고 있었던 조끼입은 소년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류조지와 단둘이 됐다. 류조지는 괴로운듯이 기침을 하고, 뭔가 알약을 입에 털어넣고, 위스키를 병채로 입에 대고 마셨다.

"나는 여기서 고아를 고용하고 있네. 그들은 모두 탐정견습생이야. 필요에 따라선 그들을 조사에 파견하기도 하지. 그들은 내 눈이자 귀이며, 손발이기도 하네. 셜록홈즈에 비유하자면,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지. 선인들로는 배울게 많아"

류조지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훑어보고, 뭔가를 적은후, 다른 서류를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이러는 사이에, 그에의해 또 하나의의 사건이 처리된 모양이었다.

"저 아이들도 범죄에 가담하고 있나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류조지는 입가에 웃음을 띄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들의 일은 탐정뿐이야."

"그렇다는건, 저아이들은 당신이 뒤에서 무슨짓을 하는지 모르는거군요"

나는 괴로운 말을 입에 담았다.

"탐정으로서 지위와 명예를 손에 넣고, 지금도 사건해결에 매진하고 있는 당신이, 어째서 범죄조직에 가담했는지… 전 이해할수 없어요. 탐정으로서의 당신,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당신은, 서로 모순하지 않고 존재할수 있나요?"

"오.히.려.뭐.가.모.순.됀.다.고.그.러.는.거.지?"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대답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목적은 탐정도, 위원회도 다를바 없네. 물론 수단이 정당한건 아니지. 내 손에는 피가 묻어있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손으로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구해왔어. 그게 내 긍지야. 그리고 그 긍지야말로 날 계속 탐정으로 있게 해주지"

류조지는 잇달아 서류들을 처리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범죄를 정당화하는건 용납될수 없어요."

나는 이말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탐정이라면 더더욱! …더욱더 범죄를 미워하고, 부당한 상대와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후후…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순간, 서류를 훑어보는 손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하지만 착각해선 안돼. 우리들도 범죄를 미워하고, 부당한 상대와 싸우고 있네. 오히려 손을 더럽히지 않고, 아름다운 소리만 들어놓는 자네와, 실제로 피내리는 전장에 서있는 우리들, 누가 더 싸우고 있는사람이라고 생각되나"

"으으…하지만"

나는 할말을 찾았다. 고작 수년 탐정을 해본 매가, 십년이상 일선에서 계속 활약해온 탐정을 말로 이기는건 무리였다.

"오랜세월 탐정을 계속해보면 말이지… 정당한 수단만으로는 절대로 그누구도 구할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네. 나는 법률과 윤리, 항상 룰이라고 이름 붙은 것과 엄격하게 마주하고 자신을 다스리는 인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몇번이고 씁쓸한 경우를 맛봤네. 나도 수없이 신에게 기도했어. 제발 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해주십시오하고"

뛰어난 탐정이기 때문에 갖는 바람. 이 세계는 그의 재능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작을지도 몰랐다.

"그게… 당신이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에 들어간 이유인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지. 흑의 도전은 어디까지나 공평한 룰아래서 행해지네. 내가 신센 미카도에게서 본 빛은, 그 공평한 정신성이야. 그가 단순한 공포주의자였다면 , 내가 제일먼저 그를 용서치 않았을거네"

"무관계한 사람이 복수에 휘말려 죽는게, 공평한건가요?"

"순수한 구제 앞에 희생은 어쩔수없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그, 그럴수가… 그러면 본말전도잖아요!"

나는 경력도 능력도, 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미숙하지만 이건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것을 정당화하고, 살인에 의문을 품지 않게 되면, 그건 바로 악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을 용서할수없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류조지는 천천히 책상옆을 돌아 내게 다가왔다.

"자.네.는.나.와.똑.같.아. 나도 악을 용서할수 없었지. 그래서 나는 악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들보다 더 강한 무기를 손에넣기로 결심한거야."

"아냐… 난 달라요"

"아니, 자네는 아직 결단하지 않았을뿐이야."

"아냐!"

정말로 아닌가?

"나는…"

정의의 사자가 되고 싶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탐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시금 그런걸 생각하자, 자신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내가 이상으로 품은 탐정상은 류조지 겟카, 그 자체가 아닌가.

"망설이는건 어쩔수 없지. 내가 맘에 들어한건 자네의 바로 그런점이야. 자네는 과거의 나지"

아냐… 나는 그렇지 않아.

"자네는 탐정으로서의 긍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 나는 그거야말로 탐정으로서 계속 존재하기 위한 절대유일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네"

류조지는 어느샌가 내 눈앞에 있다. 그의 눈동자가 날꿰뚫어보듯이 번쩍인다.

"자, 귀를 기울여보게. 자네에겐 들리는가.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언니… 유이언니… 아아 날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도움을 청하는 여동생의 목소리. 키리기리쨩의 목소리.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나는 알고있네. 자네는 본질적으로 이쪽 인간이야. 구원을 바라는 사람를 위해, 손을 더럽힐 각오를 하는자야"

탐정의 정의는? 애시당초 나는 뭘하고 싶었던거지

"자, 게임을 계속하도록하지"

류조지는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나는 그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룰은 기억하고 있지? 자네는 선택만하면 돼. 하지만 이건 자네의 인생을 크게 바꿀 선택임엔 틀림없네. 신중하고 고르게."

나는 망설이는 동안, 류조지는 외투의 안쪽에서 두개의 봉투를 꺼냈다. 한개는 새까만 봉투. 한개는 새하얀 봉투.

"어느쪽의 봉투를 골랐다면, 곧장 오른쪽으로 돌아 방밖으로 나가게"

류조지는 방의 출구를 가리켰다.

"문 너머에는 그때부터 이미 자네가 선택한 새로운 세계야."

백과 흑. 정말로 사람을 구하는건 어느쪽일까. 모르겠다. 나는 어느쪽을 택해야할까? 모르겠다. 그저 한가지 확실한건. 그녀가 날 부르는 목소리. 답은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 나가자. 나는 한쪽봉투를 손에 쥐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야. 류조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고, 빙글돌아 나에게 휠체어의 등을 보인다.

"이 내기는 내가 이긴모양이군. 나는 자네의 결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네"

나도 그에게 등을 돌리고, 방의 출구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그의 전장을 떠났다.




붉은 융단 너머, 엘리베이터 앞에는 조끼입은 소년이 서있다. 한쪽 팔에 상의를 걸친채, 팔짱을 끼고 있다. 그는 내가 오는것을 기다린후 입을 열었다.

"그쪽을 택하셨군요"

"뭐야, 너 말할수있잖아. 움직이는 인형인줄 알았어"

나는 놀라며 말했다. 내가 농담같은 소릴 말하자, 그는 말없이 내 오른손을 쥐고, 자기 가슴에 들이대 만지게 했다. 조끼 너머로 작은 고동이 느껴졌다. 나는 부끄러워져 금방 손을 뗐다. 그는 할말있는 표정으로 날 올려봤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넌 인형이 아니야. 완벽한 증명이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히죽 웃어보이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곧장 문이 열렸다. 에스코트에 따라, 그를 따라 탔다. 작은 상자속에서 단둘. 여전히 소년에게선 좋은 향기가 났다.

"어째서 그쪽을 고른건지, 가르쳐줄수 있나요?

소년은 뒤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 버튼 패널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와 재회했을때, 당당히 가슴펴고 있을수 있기 때문이야."

나는 탐정의 철학과 윤리에서 답을 이끌어낼만큼, 경험이 풍부하지도 않고 어른도 아니었다. 그래도 잃어버려선 안되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게 류조지가 말하는 긍지라는 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금 손에 쥔 봉투를 바라봤다. 검은 도전장. 그건 내가 전에 쥐었던 때보다, 두껍게 느껴졌다. 설마 다음 흑의 도전은 좀더 복잡한 룰을 필요로 하는 게임일지도 몰라. 그래도 난 질수없다.

"늠름하시네요"

소년은 자신의 감상을 입밖으로 냈다.

"당신이 어떤 봉투를 선택했든, 한동안 제가 당신을 서포트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부탁해. 너 이름은?"

"필요한가요?"

"응?"

"이름말입니다"

"이름을 모르면 널 뭐라고 불러야해"

"그럼 리코르누(リコルヌ)라고 불러주세요. 여기 사람들은 절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상한 문답이었다. 여러가지 집을 전전하는 야생 고양이처럼, 장소에 따라 불리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걸까나.

"리코르누군"

나는 확인하듯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짧게 리코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일반손님의 행렬은 아직도 끊이질 않았다. 어린 종업원들은 로비를 떠나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모양. 나와 리코는 대리석 입구를 지났다.

"우선 물어보겠는데. 너도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일원이야? 아이들은 범죄에 관여하고 있지않다고 류조지씨는 말했지만, 넌 이 검은 봉투에 대해 알고있는것 같은데"

"저는 위원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저 사정을 알고있을뿐이죠"

"그렇구나…그럼 너는 류조지측의 인간이지?"

"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을 서포트합니다"

그렇다면 내 감시역인가? 아니면 진짜 서포트역할일까. 어쩌면 류조지 나름의 공평한 방식일지도 몰랐다.

"너는 언제부터 류조지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반년전입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기억을 떠올리듯이 답했다. 그 몸짓은 아이스러웠지면, 전체적으로 어른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애였다. 건물 입구에는 리무진이 여전히 서있다. 운전석에 운전수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그래도 운전수는 아이가 아니었다. 리코가 후부 도어를 열고, 내손을 잡아 차안으로 이끌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탐정도서관? 아니면 자택입니까?"

"기숙사까지 데려다주면 고마워"

"알겠습니다"

리코는 차 전방으로 가 운전수에게 지시를 했다. 그리고 금방 돌아왔다.

"오늘은 저도 여기서 실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걸 가지고 가주십시오"

리본이 묶인 가느다란 나무상자를 건네받았다. 양손에 들어오는 사이즈의 크기로, 꽤 가벼웠다.

"류조지씨로부터의 선물입니다. 다만, 필요할때만 열어주세요"

"필요할때라…"

"그럼 다음에 뵙죠"

리코는 문을 닫고, 차에서 한걸음 떨어져 인사를 했다.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분수와 장미의 정원을 우회해,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의 행렬을 거꾸로 타며, 차는 속도를 올려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리코의 모습도, 어느샌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벽돌다리를 건너, 가로수길로 들어섰다. 주위는 어느샌가 컴컴해졌고, 군데군데 길을 밝히는 조명속에서 눈발이 흩날리는게 보였다. 도중에 가로등 아래,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아이 둘이 보였다.

"운전수씨, 잠깐 멈춰주세요"

나는 갑자기 운전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운전석과는 칸막이가 있어 보이질 않았지만, 내 목소리에 반응해 차가 멈췄다. 청소중인 아이들은 무슨일인가 싶어 차가 있는곳으로 왔다. 나는 파워 윈도를 내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얘들아"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이상해하면서 날 바라봤다.

"류조지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야?"

소년들은 서로 쳐다보고, 솔직한 미소를 보였다.

"매우 좋은 사람이에요"

"화내면 무섭지만"

둘은 입을모아 말했다.

"전 선생님같은 탐정이 되는게 꿈이에요"

"나도 크면 선생님같이 되고 싶어!"

"그렇구나… 가르쳐줘서 고마워. 청소 열심히해"

"네"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다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거짓말하는것 같진 않았다. 적어도 강요받거나, 세뇌당한 인간의 표정은 아니다. 하지만 범죄피해자구제위원회의 힘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보고있는 몯느것이. 미리 준비한 환상일지도 몰랐다. 나는 아직도 꿈속에 있는것같은 부유감을 씻을 수 없었다. 희미한 창밖을 바라보는 사이에, 경치는 점점 익숙한 도시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나는 검은 봉투를 창에 대고, 도시의 불빛으로 봉투안을 들여보려고 했으나, 전혀 보이질 않았다.



드디어 교문앞에 차가 멈췄다. 운전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운선수를 향해 인사를 하자, 차는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차선으로 돌아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현실로 돌아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기숙사의 불빛이 그립게 느껴졌다. 기숙사에 들어가자 복도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왠지 소란스럽다. 안좋은 예감이 들어. 기숙사의 다른 방에 사는 아이들이, 내가 온걸 눈치채고 말을 걸었다.

"어, 유이! 큰일이야"

"무슨일이야?"

"좌우지간 빨리와봐"

그녀들에게 이끌려, 나는 복도를 지났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여있는건 내 방앞이었다.

"유이의 방에 피킹해 들어가고 한 수상한 녀석이 있어"

"피킹?"

기숙사 친구들이 길을 비켜줘, 나는 방앞에 도착했다. 내 방문에 등을 기대고 한 여자애가 무릎을 감싸고 앉아있다. 기숙사의 낡은 형광등 불빛아래, 윤기있게 빛나는 머리카락과, 그것보다 더욱 창백한 하얀 뺨. 그녀는 불만스러운 얼굴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온걸 눈치채고,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유이언니!"

키리기리 쿄코였다. 그녀는 일어서 나에게 안겼다. 작고 가녀린 몸을 껴앉았다. 그녀의 옷은 군데군데 더러워져있고, 흙과 먼지의 냄새가 났다. 이런식으로 그녀가 나에게 몸을 맡기다니, 지금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그녀의 머리를 껴앉자, 부드러워 스러질것만 같았다.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기숙사 학생들은, 나와 키리기리의 포옹을 보고, 어째서인지 박수을 보냈다. 감동의 재회로 보였는가 싶다.

"경찰에 연락안해도 돼?"

기숙사 친구가 물었다.

"응, 괜찮아. 얘는 아는애야. 다들 고마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자신의 방에 키리기리를 밀어넣었다.

"그럼, 다들 잘자. 뒷일은 맡겨줘"

나는 방안으로 들어서, 술렁임과 호기심의 눈을 단절하듯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궜다. 키리기리는 미안한듯한 표정을 날 바라봤다.

"몰래 들어오려고 했는데, 들켰어요"

"누구든 실패하는법이야" 나는 가방을 침대위에 던지고, 키리기리를 그옆에 앉혔다.

"애시당초 정면에서 숨어들어올려고 한게 잘못아냐?"

"처음엔 창문을 깨고 들어오려고 했어요. 하지만 창에 구멍이 나면 추울까 싶어서"

"날 신경써준거구나, 고마워"

키리기리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공부책상의 의자에 앉아, 그녀와 마주했다.

"어째서 내방에 숨어들려고 했어?"

"나에겐 여기밖에 없었으니까…"

키리기리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위에 깍지낀 손을 바라봤다. 침묵이 이어졌다. 이대로 나까지 입다물면, 뭔가 설명이라고 해줄까 싶어 기대했지만, 그녀는 입을 계속 다물었다.

"하여튼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는 그녀의 손에 내손을 겹쳤다.

"걱정했어, 키리기리쨩. 연락도 없이 지금까지 어디있었어?"

"……지금은 말할수없어요"

"그게 무슨 의미야?"

나는 조금 화난듯이 말했다. "설마 날 믿을 수 없어서? 아니면 나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아녜요"

키리기리는 절박한 태도로 말했다.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됐어요…"

냉정침착한 그녀가 이렇게 흐트러졌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를 상당히 혼란스럽게한 사태가 발생했었으리. 탐정으로서 일류인 그녀를 여기까지 몰아넣은 존재라고 하면 그들밖에 없다.

"그들이 뭔짓을 한거지?"

키리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할수없어. 여자 중학생을 상대로 어른들이 전력으로 덤비고 있다. 그녀는 어쩌다 탐정일가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언젠가 유이언니에게도 설명할게요"

키리기리는 시선을 내린채로 말했다.

"하여튼, 수일동안 난 그들로부터 도망쳐다녔어요. 적어도 할아버지가 올때까지 시간을 벌기위해서. 지금 그들의 목표는 나이기에, 나만 몸을 숨기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기에…"

"대단하네. 녀석들 키리기리쨩의 행방을 놓쳤어. 너한테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유이언니!"

키리기리는 놀란표정으로 내말을 가로막았다.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요?"

"아, 그게…"

나는 고민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말해야하는가. 새로운 흑의 도전에 대해서도 말해야하는가. 하지만 그녀를 더욱 위험에 몰아넣을지도 몰랐다. 이 이상 그녀가 힘들꼴을 당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고민할것도 없이, 키리기리는 이런 나의 망설임조차 꿰뚫어 보고 있었다.

"위원회가 접촉해왔죠?"

키리기리는 미간에 작은 주름을 만들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늦었던건가… 역시 상상했던대로야. 내가 사라지면 설마 그들의 목표가 유이언니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날 끌어내기 위해. 유이언니를 이용할지도…. 그래서 곧장 이것으로 달려왔는데"

"그랬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너만이 목적인건 아닌듯해"

"무슨소리죠?"

나는 류조지와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동안 키리기리는 언제나의 차가운 탐정의 얼굴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멋지고, 하지만 조금 불쌍해보였다. 그녀의 재능은 그녀 자신을 파멸시킬정도로 강하고, 덧없었다.

"내가 하얀봉투를 택했다면, 그들은 정말로 날 동료로 맞이했을까"

"후회하고 있나요?"

"설마"

나느 코로 웃었다.

"녀석들의 속셈대로 두진 않겠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의도대로 된듯한 기분이 들어요"

확실히 류조지는 내가 흰봉투를 택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듯했다. 결과를 알고, 행동에 옮기는 그런 확신범적인 점이 무섭다.

"류조지씨의 이야기를 듣는한, 그들은 흑의 도전이 범죄피해자를 구하는 분명한 수단이라고 믿는건 틀림없는것 같아. 설마 그들에게 있어 키리기리 가문은 최대의 방해자일지도."

"과연 그럴까나…"

키리기리는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맘은 여기 없는듯한 모습이었다.

"참고로 이건 새로운 도전장"

나는 가방에서 검은 봉투를 꺼냈다.

"아직 열어보진 않았죠?"

"응. 열면 흑의도전이 시작되어 버리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자리에서 열 용기는 없었어."

도전장의 봉투에는 센서칩같은게 있어, 개봉하면 그 정보가 범인과 위원회에게 발신된다. 그리고 그순간부터 168시간이 흑의도전의 게임시간이다. 범인의 승리조건은 복수대상을 전부 죽이고, 탐정에게 고발당하지 않는것. 반대로 고발당할 경우, 표적을 전부죽이지 못했을 경우, 패배가 되며, 흑의도전에 사용한 코스트(위원회가 빌려준 돈)을 전부 갚아야할 의무가 생긴다. 도저히 일개 개인으로서는 갚을수 있는 금액이 아니기에, 범인은 생명보험 등의 대금으로 갚아야 한다.

"이대로 개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개봉하지 않은 도전장은 다른 탐정에게 넘어가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유이언니를 노리고 만든거니, 이걸 무시하면, 다른 새로운 봉투가 도착하겠죠"

나는 검은 봉투를 형광등에 대봤지만, 안은 보이지 않았다.

"또 어딘가에 갖히게 되는거려나"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이번에는 산장? 아니면 고도. 애시당초 난 살인사건전문이 아닌데…"

"하지만 사건의 난이도는 유이언니의 랭크에 맞게 설정되있을테니, 지난번보다는 쉬울거에요"

"아, 그런가"

흑의 도전에서는, 사건에 사용되는 흉기, 트릭등으로 부터 소환되는 탐정의 랭크가 정해진다. 이번에는 이미 내가 소환되는게 예고되었으므로, 대략적인 사건의 난이도는 예측된다는거군.

"키리기리쨩도 도와줄거지? 또 날 혼자두고 어딘가 가버리면 싫어"

"네, 물론이죠. 더이상 흑의도전은 나와는 무의미한, 무관계하지 않게 됐어요. 덮쳐오는 불씨는 물리쳐야죠"

키리기리는 언제보다 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게 불타올랐다.

"타임리밋을 파악하기 쉽도록, 시간을 맞춰 봉투를 열지"

내가 말했다.

"내일 정오는 어때?"

키리기리가 끄덕였다.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자. 만전의 태세로 임하는거야. 먼저 키리기리짱은 목욕부터해. 흐트러진 머리도 다시 묶어줄게"



그날밤 키리기리는 내 침대에 들어가 곧바로 콧바람을 내며 잠들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식으로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왔는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지금 평안속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건 알았다. 이런 밤이 계속됐으면 좋을텐데. 그 조차 용납되지 않는 숙명인가. 침대는 두사람이 자기엔 너무 좁아, 나는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아마도 평화로운 밤은 오늘을 최후로, 한동안 찾아오지 않으리.

날이 밝고, 1월 10일. 나는 키리기리와 학교에 일주일간의 휴학신청서를 제출했다. 학장인 시스터는 이해심있는 사람이라 문제없이 받아줬다. 나는 정오에 딱맞춰, 검은 봉투를 열었다.


1장 소년과 백작 完 (p.10~p.66)


덧글

  • 각시수련 2016/04/18 15:15 # 답글

    2권 다 읽은지가 언제인데 이제 3,4권 읽는중. http://waterlotus.egloos.com/3448957 3권에서 미카가미 레이 나올것 같아서 표지의 미소년이 그인줄 알았는데 리코라는 이름으로 등장. (사실은 그가...) 지금 3권 읽고있는데, 그냥 1장만 전부 대충 번역해봄.
    원래 류조지의 일인칭은 我輩(와가하이). 근데 그냥 옮겼다.
    저이후에 미카가미 레이를 노리고 3명의 킬러가 등장하는데;; 다들 조난 약함 ㅋㅋㅋ 이게 월드클라스 프로킬러냐. 한놈은 어째 리코한테도 처밀림 ㅋㅋㅋ 오히려 2권이 살인사건 중점이었고, 3권은 그냥 밀실십이궁편(密室十二宮編)의 전편같은 느낌

    3명의 킬러. 카피캣. 나이트 플라이어, 초고교급 클라이머 히토모시 츠루기(火燈剣)
    키보가미네 학원 졸업생도 킬러로 등장.
  • 각시수련 2016/04/18 15:09 # 답글

    http://bookmeter.com/b/4061399063 リコが一晩でやってくれましたwwww
  • emfla22 2016/04/18 19:13 # 답글

    단간론파 3기 애니도 나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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