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야부 역사당. 헤이안 시대를 살았던 여자 오타쿠의 일생 영상문화생활








망상 다이스키. 헤이안 시대의 원조 부녀자.
겐지 모노가타리에 푹빠졌던 팝한 귀족 여성의 적나라한 일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고전문학 시간 때, 배우게 되는 헤이안 시대 일기문학의 대표작 사라시나 일기(更級日記)의 저자로 유명한, 스가와라노 타카스에의 딸 (菅原孝標女). (사라시나 일기는 그녀가 13세~52세까지의 인생을 떠올리며 쓴 회상록.) 그런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의 인간성 넘치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자.



코야부 역사당 : 사누키 우동과 쿠카이 (空海,공해)
코야부 역사당 - 화려하고 유쾌한 호소카와 패밀리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 (菅原孝標女, 스가와라노 타카스에노 무스메, 1008?~1059 이후?)


1. 일본에서 학문의 신이라 추앙받는 "천신(天神)"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현손자 = 타카스에의 차녀. 사라시나 일기의 작가.
2. 아버지의 부임지인 카즈사노쿠니(上総国, 현재 치바현)에서 겐지모노가타리에 빠지게 된다.
3. 13세 때, 아버지의 임기가 종료되어 일가 상경후, 겐지모노가타리의 오마주인『하마마츠 츄나곤 모노가타리(浜松中納言物語)』
『요와노네자메(夜半の寝覚)』등의 궁중연애물을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본명은 전해지지 않아서 불명이다.



아버지 스가와라 타카스에는 카스사노쿠니(上総国), 히타치노쿠니(常陸国)의 수령(受領)을 맡았었고,
어머니는 후지와라 토모야스(藤原倫寧)의 딸.
숙모(어머니의 배다른 언니)는「카게로우 일기(蜻蛉日記)」의 저자로 유명한 후지와라 미치츠나의 어머니(藤原道綱母).
오빠인 사다요시(定義)와 조카인 아리요시(在良)는 학자이다.









1.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은 태어나서 첫 출근, 첫날부터 일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사라시나 닛키 50단 (更級日記, 사라시나 일기, 경급일기)

드디어 동경하던 미야즈카에(宮仕え, 궁중에서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혹은 그러한 직업).
첫 출근날의 밤을 맞이한 나는, 8장의 색옷(=우치키,袿)으로 코디한「키쿠가사네(菊襲)」를 입고, 궁중으로!
그런데 지금까지「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만 열중하던 나에게, 궁중에서 아는 친척과 지인은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고풍스런 양친과, 달과 꽃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해본적이 없는 내가 화려한「리얼충」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기분을 말하자면「겐지모노가타리랑 전혀 다르잖아!」눈앞의 모든것이 리얼하게 보여지고, 결국 날이 밝아오자 곧장 귀가.

「재밌는 것을 보고, 듣고, 엄청 즐거울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출근전에 기대했었는데, 실제로는「별 재미도 없는」일들만 잔뜩이라, 이렇게 슬퍼지는 기분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세이쇼나곤 마쿠라노소시에마키(枕草子絵巻) 가마쿠라 시대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은 1040년 (=쵸큐 원년)에 유시 내친왕(祐子内親王) (= 고스자쿠 천황의 제3황녀)를 섬기게 되면서
궁중생활을 시작하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가 32세. 32세 때 생애 첫출근을 한 것이다 ㅋㅋ

32세에 미야즈카에(宮仕え)면 상당히 늦은 나이.



대개 10대에 궁중생활을 시작하게 되는게 보통인데, 일본 고전으로 유명한 마쿠라노소시의 작가인 세이 쇼나곤도 늦은 나이에 궁중생활을 시작했다. 세이 쇼나곤(清少納言)은 28세에 츄큐 테이시(中宮定子)를 섬기면서 뇨보(女房)가 되는데, 이때 그녀도 28세의 늦은 나이로 궁중에 들어가서인지, 일이 익숙치 않아서 실수를 거듭했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기록을 남겼다. 실제로 가마쿠라 시대에 그려진 마쿠라노소시 에마키에는 궁중에서 눈에 띄이지 않게, 장지 뒤에 숨어있는 세이쇼나곤의 모습이 삽화로 그려져있다. 28세가 저 정도인데, 여성 오타쿠가 32세에 첫출근 했으면 말 다했지 ㅠㅠㅠ










또, 그녀는 어렸을때부터 숙모가 가져다 준 겐지모노가타리의 매력에 빠져서, 집에서 계속 그것만 읽었다고 한다.
현대말로 표현하자면 히키코모리 + 오타쿠였던 여성. 거의 니트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랬던 사람이 자신이 빠진 겐지모노가타리의 세계인 교토. 궁중의 생활을 기대하고 늦은 나이에 궁중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계속 꿈꿔왔던 세계와 현실이 다른 것을 깨닫고, 출근 첫날부터 귀가를 했던 것.


즉, 모노가타리 세계에 너무 빠진 오타쿠 여성이, 현실세계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발생한 에피소드.









2.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은 미남이「봄이 좋아? 가을이 좋아?」라고 묻자, 남자가 질색할 정도로 친구와 다투었다.



사라시나 일기 62단



몇몇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미남인 미나모토노 스케미치가 문득 사계절의 이야기를 꺼내왔다.

「봄은 봄안개가 재밌지, 하늘도 평온하고 빛이 흐르는 밤에 비파를 연주하는 것도 좋지요. 가을은 안개의 달밤에, 바람과 벌레들이 울 때, 이거야 말로 가을! 이라는 순간, 금(琴)과 피리를 연주하면, 참을 수 없을만큼 좋죠. 그런데 너희들은 어느쪽이 좋아?」라고 물었다.


나의 여자친구가「가을에 한표~」하고 대답하자, 나는 대답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연둣빛 하늘에 벚꽃이 녹아드는, 봄 안개의 달밤이 멋지다」라고 노래를 불러 답했다. 그러자 스케미치는 몇번인가 나의 노래를 복창한 다음에, 「앞으로 나에게 봄 밤은 너와 만남의 추억이 될지도」라고 나를 향해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가을에 한표를 넣었던 여자친구가,「두 사람이 모두 봄이라면 나는 가을의 달을 혼자서 봐야겠네요」라고 삐치면서 노래를 부르기에 스케미치는 도대체 어느쪽 편을 들어야될지 모를 분위기가 되서,「중국의 훌륭한 사람들도 봄과 가을의 비교는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했어요. 두 사람 모두 단숨에 답을 고른게 대단하네요. 분명 두 사람 모두, 깊은 생각이 있는거겠죠. 다음에 만났을 때 그러한 포인트를 알려줬으면 좋겠네요.」라고 하며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사라시나 일기 62단의 저 문장은 굉장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일본 고전문학 입시에도 자주 나오는 문장.



아름다운 계절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인데, 옛날 헤이안 귀족의 관습을 알고 보면 아주 재밌는 이야기로 변하게 된다.



[봄이 좋은가? 가을이 좋은가?] 라는 춘추우열론은

애시당초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으로. '할 이야기도 없으니, 이제 그만 하자' 라는 당시 귀족의 관용구(신호).




그러니까 문장 속에서 미나모토노 스케미치란 남성은 이제 슬슬 할 이야기도 없으니까 그만 접자면서, 봄과 가을의 네타를 꺼낸 것이다. 당시의 예법으로는 봄과 가을의 이야기가 나오면 이야기를 접어야하는게 보통인데,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은 그런 분위기도 못 읽고, "나는 봄이 좋아요" 라고 하면서 막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하며 대답했던 것이다. 그녀는 흔히 KY = 공기(K)를 못 읽는(Y) 속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가 질겁했던 것 ㅋㅋㅋㅋㅋ 이런 뒷 사정까지 알고 보면 골계(滑稽)한 이야기.



겐지모노가타리 덕후인, 부녀자 여성이 늦은 나이에 사회에 나와서 분위기도 못 읽고 ㅋㅋㅋ
으악 눈물난닼ㅋㅋㅋㅋ
아마 어릴적부터 너무 책 속의 세계에만 푹 빠져 있었기에, 모임의 분위기를 읽는 것도 서툴렀던 것 같다.







그녀의 겐지모노가타리 덕질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菅原孝標女)은 겐지 모노가타리 덕후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여성.
실제로 그녀가 쓴 사라시나 일기(更級日記)는 겐지모노가타리가 가장 빠른 시기에 언급되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1) 어릴적 겐지모노가타리를 읽고 싶어, 집에 틀어박혀 등신대 불상(약사여래)을 만들고, 이마가 닳도록 기도를 올렸다.
2) 그녀는 겐지모노가타리를 읽으면, 절세의 미녀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읽고 싶어서 기도를 올렸던 것 그렇다 쳐도 두번째는 ㅋㅋㅋㅋㅋㅋㅋ






3.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은 만년에「좀 더 제대로 살았으면 좋았을걸」하고 엄청 후회했다.

사라시나 일기 78단



옛날부터,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겐지모노가타리」에 열중하지 말고, 열심히 부처님께 손 모아 빌었다면 이렇게 보잘 것없는 인생을 살지는 않았을텐데. 옛날, 부처님의 꿈을 꾸었을 때, 곧장 부처님을 참배하러 갔었으면,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지 않았을지도그리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꿈을 꾸었을 때, 진지하게 기도를 올렸으면, 지금쯤 천황의 유모 정도로 출세했을텐데다른 꿈에 나왔던 거울속의 보잘것 없는 나만이 현실이 되다니 한심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고, 끝나버린 내 인생. 오늘도 아무것도 안하고, 어슬렁어슬렁거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모노가타리 덕후인 그녀가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한 후회 ㅠㅠㅠㅠ (남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겐지모노가타리를 부정하면서, 차라리 그 시간에 부처나 아마테라스한테 기도나 할걸 그랬다라고 고백한다.
실제로 겐지모노가타리의 오마주, 즉 아류소설인 浜松中納言物語夜半の寝覚 도 그녀가 쓴게 아닐까 하고 추정되는데,
흔히 말하는 동인작 같은거 ㅋㅋ 그런 겐지모노가타리를 만년에 쓸데없는데 빠졌었다고, 전면 부정한다ㅠㅠ


실제로 그녀는 13세때부터 꿈에 자주 스님이 나와 법화경을 읽어라 라는 소리를 하지만, 걍 개무시하고 모노가타리에 열중했었다.
하지만 이런 철없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만년 사라시나 일기에서「まづ いとはかなく あさまし」라는 말로 비평한다.




http://www.h3.dion.ne.jp/~urutora/sarasina.htm#mo

夢に、いと清げなる僧の、黄なる地の袈裟(けさ)着たるが来て、「法華経五の巻を、とく習へ」と言ふと見れど、人にも語らず、習はむとも思ひかけず。物語のことをのみ心にしめて、われはこのごろわろきぞかし、盛りにならば、かたちも限りなくよく、髪もいみじく長くなりなむ、光の源氏の夕顔、宇治の大将の浮舟の女君のやうにこそあらめと思ひける心、まづいとはかなく、あさまし。


꿈 속에 청결한 느낌의 승려가 노란, 땅의 가사를 입고 나타나,「법화경 5권을 빨리 배워라」라고 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법화경을 배울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겐지모노가타리만이 내 머리 속에 가득했다. 난 지금 아직 기량도 없지만, 분명 나이가 들면 얼굴도 한없이 예뻐질 것이고, 머리도 멋지게 자랄것이 틀림없다. 분명 히카루 겐지에게 사랑받는 얼굴, 우지 대장(宇治の大将)의 우키후네(浮舟) 온나기미처럼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철없던 마음이었던가. (更級日記,菅原孝標女)




그녀는 32세에 궁중일을 시작하고, 33세에 타치바나노 토시미치(橘俊通)와 결혼한다. 그후 아들인 나카토시(仲俊)를 낳게 된다.
하지만 34세, 남편이 시모츠케 지방에 부임하게 되는데 그곳에 동행하지 않고, 다시 유시 내친왕에게 출사해 궁중생활. 이때 위에도 등장한 미나모토노 스케미치(源資通)라는 풍류남과 교제하지만, 이후 점차 가정생활에 전념하면서 현실 세계에 눈을 뜨고 모노가타리 속의 세계를 잊고 신앙생활에 정진한다. 51세(=1058년), 남편은 병으로 죽고, 1남 2녀의 자녀도 차츰 독립해서 떠나버리고, 고독한 생활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의 불교신앙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인생이 피폐해질 정도의 덕질은 금하라는 교훈을 몸소 일생의 기록(일기)을 통해 알려준 헤이안 시대 원조 여덕후, 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菅原孝標女)의 재밌는 일화로 본 간략한 일생이었다.


하지만 문학소녀 기질로 모노가타리에 푹 빠졌다는 점과, 현재 일본인들이 고전문학 시간에 배우고, 입시에도 나오는 헤이안 여류 일기문학의 대표작인 사라시나 일기를 남긴거 보면, 사스가 일본 학문의 신 "천신(天神)"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현손자(스가와라 타카스에)의 딸. 피는 못 속이는듯. 어쩌면 저런 인생 자체(모노가타리 문학 덕후)는 가문의 피에서 기인한걸지도 ㅋㅋㅋ








덧글

  • 닥터오진 2014/04/11 10:56 # 답글

    남 일이 아니라서 웃지만은 못하겠네요ㅠㅠ
    어쩌면 지금 오덕들이 쓰고 있는 글들중에 잘 쓴 글이 나중에 교과서에 나오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술못받는현섭이 2014/04/11 10:58 # 답글

    이런저런 글들 올려주시는대로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저 그런데요... 죄송하지만요... 야루오 노부나가 번역은 이제 안 올려주시는 건가요? 좀 올려주시면.... 굽신굽신...
  • 2014/04/11 11:43 # 삭제 답글

    저도 마냥 웃으면서 볼 수는 없었네요.
    근데 굉장히 늦게 시집을 갔군요.
    일본엔 딱히 결혼 적령기라는 게 없었던 건지
    32살은 현재도 노처녀란 소리 듣기도 하는데
    저 시대에 32살에 첫 출근해서 33살에 결혼한 여자가 있었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
    게다가 혼처도 있었군요!
  • 수묵이 2014/04/11 15:16 # 답글

    오타쿠
  • 지나가다 2014/04/17 17:34 # 삭제 답글

    포스팅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쓸데없는데 빠져서 인생을 허비했다고 말년에 후회한 것 치곤 남긴 업적(?)이 만만치 않은데요,
    아이러니해서 흥미롭네요. 사라시나 일기 찾아봐야 겠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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