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眞)실의 말(言)이라고 쓰고 진언(眞言). 일본 불교계가 낳은 슈퍼스타 승려, 쿠가이.
불교의 신시대를 연 남자의 금단의 가르침. 일본 불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스카이시씨의 알려지지 않은 뒷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공해(空海)를 Sky Sea로 소개하는 냥타. (아놔 냥타 개드립 뭐냐 ㅋㅋㅋ)
코야부 역사당 - 화려하고 유쾌한 호소카와 패밀리
코야부 역사당 (コヤブ歴史堂). 역사 좋아해서 그런지 은근히 이 프로 재밌단 말이지 ㅋㅋ 심심할 때 한번씩 보면 나름 허니잼.
그래서 또 방송내용을 정리해봤다. 재미는 호소카와 패밀리편이 더 재밌었음.

홍법대사 쿠카이 (空海, 공해,774년~835년)
헤이안 시대의 승려, 일본 서도(書道)사상, 가장 뛰어난「삼필(三筆)」중의 한 명.
804년 당나라에 유학승으로 건너간다. 귀국 후 와카산(和歌山), 고야산(高野山)을 거점으로 진언종(真言宗)을 연다. (진언종 개조)
진언종은 쿠카이가 당의 장안에 건너가, 청룡사(青龍寺)의 혜과(恵果)에게 배운 밀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다.「弘法(こうぼう)も筆(ふで)の誤(あやま)り」 (홍법대사도 붓을 잘못 놀릴 때가 있다.)
홍법대사 쿠우카이는 일본 서도사상 가장 뛰어난 삼필 중 한 명. 즉, 그러한 달인도 실패할 때가 있다는 말.
흔히 말하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일본 속담.
일본 삼필(三筆) : 헤이안 시대 초기의 쿠카이, 사가 천황(嵯峨天皇), 타치바나노 하야나리(橘逸勢)를 효시로 삼고 있다.

1. 쿠카이는 글자를 너무 잘 써서, 천황을 찍소리도 못하게 한 적이 있다.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 코콘쵸몬쥬)
가마쿠라 시대, 13세기 전반의 이가노카미(伊賀守) 타치바나노 나리스에(橘成季)에 의해서 편찬된 세속설화집.
사가천황과 쿠카이는 서도(書道)의 라이벌. 언제나 글씨를 잘쓰는 것을 겨루었다. 그러던 어느날 천황이 한권의 책을 꺼내서,
쿠카이에게 보여주며「이 글자 쩔지 않냐? 어디 사는 중국인이 썼다고 하는데, 글자를 너무 잘써서 거의 신급이네,
우리들도 이정도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고 뜨겁게 이야기하였다.
이 이야기를「음음」하고 듣던 쿠카이는 천천히 입을 열면서,「아, 그거 제가 중국 유학중에 중국에서 쓴건데요」라고 말했다.
「엥~? 말도 안되는 거짓말하지마, 니 글씨가 아니잖아. 필적도 다르고!」라고 말하며 천황은 전혀 믿질 않았다
「그럼 족자를 벗기고, 뒤를 조사해보세요」천황이 쿠카이가 말하는대로 하자, 확실히「모월 모일 장안의 청룡사에서 쿠카이가 쓰다」
라는 서명이 있었다.「진짜냐…너한테는 졌다…」라고 말하며, 천황은 고개를 떨구었다.
「근데 왜 필적이 다르냐?」라고 천황이 묻자, 쿠카이는「사실 저 TPO(시간,장소,경우)에 맞춰서 필적을 바꾸고 있거든요.
중국에서 유행하는 글자라든가, 일본풍의 우아한 글자라든가하는 식으로요」라고 대답했다.
천황은 더더욱 침울해하며, 두 번 다시 쿠카이와 글씨로 다투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가천황도 삼필 중의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글씨를 잘썼던 사람인데, 그런 그조차 찍소리도 못할 정도의 글을 잘 썼다는 쿠카이.
즉, 삼필 중에서도 쿠카이의 글씨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저 시대에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은 단순하게 "아 잘쓰네" 가 아니라, 글을 잘쓰는 것만으로도 인격에 상관없이, 존경을 받고,
대단하다고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공문서도 오로지 글씨가 예쁘다라는 이유만으로, 내용에 상관없이 서류통과되기도 했다.
글씨가 더러우면, 서류를 읽지도 않고 내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2. 쿠카이는「너 때문에 생밤 못 익히겠잖아」라고 말한 스님을 저주해서 죽여버렸다.
콘쟈쿠모노가타리슈(今昔物語集, 금석물어집) : 헤이안 시대 말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설화집. 전31권.
어느날, 사가천황은 쿠카이에게 슈엔(修円)이라는 승려의「불을 사용하지 않고, 생밤을 익히는 법력」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했다.
쿠카이는「그거 대단하네요! 나도 생밤을 익히는 법력을 보고 싶네요. 슈엔을 불러주세요. 저는 숨어서 볼테니까」라고 부탁했다.
수일뒤 어슬렁 어슬렁 찾아온 슈엔. 언제나처럼 천황의 앞에서 법력을 보여려고 하지만, 생밤은 익질 않았다.
「뭐야, 이상하네…」라며 초조해하는 슈엔.
그 때, 숨어있던 쿠카이가「후후후…」하고 모습을 나타내었다.「설마 밤이 익질 않는 것은 네 짓이냐!」라고 깨달은 슈엔.
이 일이 있은 뒤로부터 쿠카이와 슈엔은, 서로「죽어라」며 저주를 걸기 시작했다. 영원히 계속되는 법력대결.
이 때 쿠카이는 한 계략을 생각해내는데, 제자에게 장례식의 준비를 시키고「쿠카이는 죽었다」라는 소문을 퍼트린다.
소문을 믿은 슈엔은 기뻐하며 방심하는데, 이때 쿠카이는 모든 힘을 쏟아서「죽어라」라고 저주했고, 때문에 슈엔은 죽었다.


이건 크게 이야기가 부풀려진 패턴. 쿠카이는 너무 훌륭한 승려라서 대개 그의 이야기는 크게 부풀려져서 전해지는 것이 많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슈엔(修円)이라는 인물도 실재한 인물. 마찬가지로 헤이안 전기의 훌륭한 승려 (법상종의 승려).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오래된 불교와 새로운 불교가 대립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오래된 불교 (정치에 관여하는 종교)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슈엔이라는 승려.
새로운 불교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를 대표하는 것이 쿠카이.
그리고 결국에는 새로운 불교가 이기게 되는데, 이러한 불교계 신구교체의 흐름을 민중들이 재밌게 "법력대결" 에 비유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쿠카이의 영웅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 실제로 쿠카이가 슈엔을 주살(呪殺)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법상종 승려인 정생선사(檉生禅師) 슈엔은 쿠카이와도 친했으며,
천태종, 진언종 같은 당시의 새로운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고 한다. ㅋㅋㅋㅋ
이외의 쿠카이의 대단한 전설들

또 냥타 개드립 작렬 ㅋㅋㅋㅋ 空海 (くうかい) 와 食うかい? ㅋㅋㅋㅋ
1) 잘못 글자를 써버린 간판에 붓을 내던져서 멋지게 수정해보였다.
2) 쿠카이는 2년 4개월, 수행을 위해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에이 물은 마셨겠지 ㅋㅋ)

3) 쿠카이가 중국에서 사누키 우동(讃岐うどん)과 테코네 스시를 가져왔다.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카가와 현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동은 쿠카이가 당에서 가져왔다는 전승.
민간전승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다들 이야기하지만, 이런 "우동공해청래설(うどん空海請来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 우동(うどん)은 쿠카이가 당에서 가져 왔다는「당과자(唐菓子)」를 원류로 삼고 있다고 한다.
「당과자」는 소맥분에 속을 넣어서 익힌 것으로「혼돈(混沌,콘톤)」이라고 불렸다. 이것이「검돈(検飩,켄톤)」이 되고,
삶아 따뜻한때 먹는 것이라고 하여「온돈(温飩,온톤)」이 되고, 이것이 다시금「온돈(饂飩,온톤)」이 되어
현재의「우동(うどん)」이라는 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야마노 아키오, 우동전래의 고찰 中 (山野明男, うどん伝来の一考察)
하지만 이를 역사적 사실로서 모든 학회에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결국, 순례자 등에 의해서 홍법대사의 신앙이 강한 카가와에서는 뭔가 잘 모르는 일이 있으면 뭐든 대사님이 한거라고 하면서
안심을 얻는 홍법대사 신앙 때문으로 추측된다. 앞으로의 역사연구, 쿠카이연구의 실증적 성과가 더 필요한 부분.

3. 쿠카이는 엉덩이로 하는걸 싫어하는 소년에게는, 산초를 항문에 바르라고 충고했다.
호색여침(好色旅枕)
흔히 말하는 "뒤로" 행할 때, 소년은 항문의 아픔을 싫어하는 법이다.
그럴때는 산초(山椒) 가루에 침을 조금 묻혀, 소년의 구멍에 바르면, 엉덩이가 가려워진다. 그 후, 천천히 다루면서 삽입해야 된다.
그렇게 하면 가려움 때문에 소년은 엉덩이의 아픔을 신경쓰지 않게 된다.
이는 비법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서는 안 된다고 쿠카이님이 말씀하셨다.

재현 VTR ㅋㅋㅋ 아놬ㅋㅋㅋ 아 앙대 거기는 ㅋㅋㅋ

사스가 역사와 전통의 일본 남색문화.
물론 진짜로 쿠카이가 저렇게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후세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
저 호색여침(好色旅枕)은 에도시대의 책으로 수상쩍은 이야기들을 많이 모은 책이다. 저런건 일본사 시험에도 안 나온다 ㅋㅋ
쿠카이는 업적과 명성이 놀라울 정도의 승려라서 사후 1000년에 걸쳐서 이름을 도용당했다. (흔히 말하는 빅네임 ㅋㅋㅋ)
쿠카이는 의학에도 소양이 있었기 때문에 쿠카이 전래의 약이라면서 사기를 치는 상법도 에도시대에는 흔했다.
재밌고 알기쉽게 콩트와 토크 섞어서 하니까, 보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은
뚜뚜룻. 포스팅 쓰면서 추가로 여러가지 더 조사를 하니, 딱히 어디에 쓸데도 없는 일본사 잡지식만 조금씩 늘어간다.
아 사누키 우동 먹고 싶네 ㅠㅠㅠ
태그 : 코야부역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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