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부치 겐의 할아버지 오오츠보 스나오에 대한 일화들 개잡소리




소설가이자 각본가인 우로부치 겐의 할아버지가 탐정소설가였다고 밝혀졌기에
그의 할아버지인 오오츠보 스나오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상당히 재밌는 사건들이 꽤 있더라 ㅋㅋ

바로 누키우치 좌담회 사건과 마동자 논쟁이다.

이 사건들은 일본 추리문단사에 흔적을 남긴 사건인지라 추리문단전후사라는 책에도 실려있더라.


http://ja.wikipedia.org/wiki/大坪砂男

오오츠보 스나오, 오쓰보 스나오 大坪砂男 (본명 : 와다 로쿠로 和田六郎) 의
아들은 배우, 성우, 극작가인 와다 슈 和田周, 손자는 소설가, 각본가인 우로부치 겐이다.

필명인 스나오 砂男 는 독일 작가인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가이자 작곡가)의
작품인 모래남자「砂男」(Der Sandmann)에서 따왔다.

그리고 오오츠보 스나오의 작품은 전부 단편작 이다.

그는 일본 광물학 선구자인 와다 츠나시로 和田維四郎 (동경제국대학교수, 귀족원의원) 의
육남으로 태어났으며. 도쿄 약학전문학교 (현재 도쿄약과대학)을 졸업했다.

우로부치 겐 가정 : 할아버지는 탐정소설가, 아버지는 배우, 어머니는 성우 ㅋㅋ 본인은 에로게 라이터 ㅋㅋ

作家 虚淵玄、父親が俳優の和田周、祖父は探偵小説家・大坪砂男 母親も声優
http://anago.2ch.net/test/read.cgi/moeplus/1374931212/

2013년 오오츠보 스나오 전집이 도쿄소겐샤 (東京創元社 동경창원사) 의 창원추리문고에서 나왔는데,  

 오오츠보 스나오 전집 1 입춘대길 立春大吉 (본격추리편) - (2013년 1월)
 오오츠보 스나오 전집 2 텐구 天狗 (기발한 상상편과 시대편) - (2013년 3월)
 오오츠보 스나오 전집 3 사형 私刑 (린치) (서스펜스편) - (2013년 5월)
 오오츠보 스나오 전집 4 영인 零人 (환상소설편, 꽁트편, SF편) - (2013년 7월)

어떤 소설을 썼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우선 관심이 가는 본격추리편만 사서 읽어볼 생각.
4권의 해설에서 엮은이 쿠사카 산조 日下三蔵 가 우로부치 겐은 오오츠보의 손자라는 이야기를 함.


마동자 논쟁 - 오오츠보 스나오, 익명의 비평가에게 신나게 까이다


마동자 논쟁 魔童子論争

마동자 논쟁이란 관서탐정작가클럽 회보『KTSC』지상에서
익명의 비평가 "마동자 魔童子" 와 오오츠보 스나오 大坪砂男 사이에서 벌어진 문학논쟁이다.

1952년 3월 발행의『KTSC』제49호부터, 5월 발행의 51호까지 3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사건의 경위

발단은 마동자라고 하는 익명의 비평가가『KTSC』제49호 게재의「암중귀어 暗中鬼語」에서
당시의 탐정작가클럽상을「대야 돌리기 タライ廻し」「서로 돌아가며 상받기 輪番制」라고 비난하면서였다.

※ 탐정작가클럽상 (現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현재 미스터리 업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1950년도에 오오츠보 스나오가 『사형 私刑 (린치リンチ)』로 이 탐정작가 클럽상을 수상했다.

이때 이름이 지명되어「관동의 기묘한 유령」이라고 야유받은 오오츠보 스나오는 제50호에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마동자라는 양반, 이름을 밝혀라!」「익명비평이라는 고등기술은 관록이 붙은 사람이나 하는거다」
「삼류가 남 뺨이나 때리며, 헛소리를 하는 건 민폐다」「정체도 못 밝히는 어이없는 녀석」이라고 반격했다.

이에 대해서 마동자는「익명비평은 관록이 있는 사람만 하는 거라는데, 그런 말도 안되는 정의가 비평학사상 어디 있었나」
「그럼 오오츠보 스나오는 도대체 얼마나 관록이 있나」「당신도 작가라면, 비평에는 작품으로 답해야하는게 아닌가」

라고 반론했다. 그러자 오오츠보는 제51호에서

「작년, KTSC 회보는 (클럽상에 대해서 ) 조롱적인 표현을 게재했고, 그래서 나는 불쾌했다」라고 해명.
그리고「마동자 군은 하코네산 서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쿄에 있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라고
단언하면서,「문제는 불문에 부치겠다」「나는 마동자의 충고대로, 이후 언행을 조심하고 창작에 전념하겠다. 그럼 이만」
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에 대해 마동자 측은「마동자는 작년 클럽상에 대해서 귀하가 걱정하는 듯한 조롱적 언사는 털끝만큼도 없었다.」라고
반박하면서「정체는 동쪽에 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라는 말도 전부 당신의 허세다」「마동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라고 조롱했지만, 오오츠보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이 논쟁은 종결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마동자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이는 다카기 아키미츠와 야마다 후타로의 두사람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 야마무라 마사오 山村正夫『추리문단전후사 推理文壇戦後史』pp.226-244(双葉社,1973年)

http://ja.wikipedia.org/wiki/魔童子論争


쉽게 이야기하면 잡지상으로 키배 떴는데, 우로부치 할아버지가 그냥 깨갱한듯 ㅋㅋ

ㅋㅋㅋ 누가 우로부치 할배 깠나 싶었는데 데뷔 잡지(보석)가 같은 타카기 아키미츠와 야마다 후타로 ㅋㅋㅋ

아 빵터짐 ㅋㅋㅋ 3명 모두 전후파 5인남이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심지어 저 탐정클럽상은 그들을 그렇게 부른
에도가와 란포가 세운 탐정작가 클럽 (1947년 6월 21일 설립, 現 일본추리작가협회) 에서 주는 상임 ㅋㅋ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by 정윤성

다카기 아키미쓰 소설 중에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온 작품은 2개가 있다.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와 <문신살인사건>

야마다 후타로는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 전후를 대표하는 오락소설가이고. (전기소설, 추리소설, 시대소설) 
인법첩 시리즈가 유명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된 바질리스크 ~ 코우가인법첩 ~ 의 원작이 그의 작품.

오오츠보 스나오 전집 1 - 입춘대길 (본격추리편)

전후파 5인남 戦後派五人男

에도가와 란포가「보석 宝石」지에서 데뷔한 카야마 시게루 香山滋, 시마다 카즈오 島田一男,
야마다 후타로 山田風太郎, 타카기 아키미츠 高木彬光, 오오츠보 스나오를 두고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우로부치 겐의 할아버지인 오오츠보 스나오는 일본 5대 탐정소설가가 아니라, 전후파 5인남중의 한명이다.
일본 탐정소설사를 통틀어서 5대 탐정소설가 아니라, 그냥 에도가와 란포가 5명 묶어서 그렇게 평한 것.

쉽게 예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나루토에서 전설의 3닌자라고 불린 지라이야, 오로치마루, 츠나데가 그렇게 불린건
닌자 역사상 전설적으로 뛰어난 3명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비 마을의 한조가 너희들 3명은 나랑 싸워서 살아남았으니 
너희들은 전설의 3닌자 ㅋㅋ
라고 해서 그렇게 된건데, 전후파 5인남 역시 그거랑 비슷한 뉘앙스라고 보면 될듯함.

저 5명 보다도 저런식으로 그들을 평가하면서 부른 명칭이 훗날까지도 전해지게 된 에도가와 란포가 더 대단함.


또, 일본추리문학사중에 우로부치의 할아버지인 오오츠보 스나오가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 있는데,

바로 누키우치좌담회사건 (抜打座談会事件) 이다.


누키우치 좌담회 사건 - 우로부치 할아버지는 어글이 장사셨제 ㅋ


누키우치 좌담회 사건 抜打座談会事件

하쿠유샤 (박우사 博友社) 간행의 잡지『신청년』1950년 4월호에 게재된「탐정작가 누키우치 좌담회」로 인해

일본추리소설계의 본격파와 문학파의 대립을 심화시킨 사건이다.


사건의 경위

1950년, 오오츠보 스나오와 미야노 무라코가 간사를 맡아 신년회를 열었다.
집합장소는 도쿄부 신주쿠구 아게바 마치의 하쿠유샤 (박우사 博友社).

출석자는 기기 타카타로 (木々高太郎), 오오츠보 스나오 (大坪砂男), 나가세 산고 (永瀬三吾),
미야노 무라코 (宮野村子), 오카다 샤치코 (岡田鯱彦), 히카와 로우 (氷川瓏), 혼마 타마요 (本間田麻誉) 의 7명이다.

출석자들 대부분이 자신은 문학파라고 칭하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오카다 한 사람 만이 본격파의 자리를 지켰다.
이어 출석자들은 카구라자카의 작은 요리점 "키라쿠 喜らく" 에 안내되었고, 속기사가 그들과 함께 했다.

거기에『신청년 新青年』 편집장 타카모리 에이지가 나타나서, 출석자들에게「매우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죄송하지만,
속기를 해서 잡지에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누키우치 좌담회라는 형식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좌담회에서 자신을 문학파라고 칭하는 출석자들이, 본격파 탐정작가들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였다.

예를 들어 오오츠보 스나오

「저급한 탐정소설이 발행부수가 많은 잡지에 게재되는데, 그 유일한 이유는 경제적 근거에 있다」
「그런 사람들 (=본격파 여러 작가들) 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들이느냐다」라고 발언했다.


사건의 반향

이 좌담회를 읽은 에도가와 란포는 곧바로『보석 宝石』의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서

『「누키우치 좌담회」를 평가한다』라는 글을 1950년 5월호에 발표한다. 란포의 반박문은 온건한 내용이였지만,
히카와의 회상에 따르면 란포는 오카다로부터 좌담회의 이야기를 모두 전해듣고는 감정이 심하게 상했다고 한다.

요코야마 세이시와 다카기 아키미츠도 격노했다. 특히 다카기는 오오츠보의 발언에 맹반발하면서,
오오츠보의 작품이 실린 잡지와 단행본을 목욕물을 데우는 불쏘시개로 태워버리고 분을 풀었다고 한다.

본격파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던 보석사 사장 이와타니 미츠루 岩谷満 는 이 좌담회를『보석』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하고
좌담회에 출석한 작가들의 원고를『보석』에서 보이콧하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서 문학파의 여러작가들 역시 반발했고, 소동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원래 매출부수가 그렇게 좋지 않던『신청년』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누기우키좌담회 게재로부터 3개월 후인
1950년 7월호로 휴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로서 문학파는 위축되고 침묵할수 밖에 없었으며 사태는 잠잠해진다.

이때의 좌담회에서 문학파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햇던 새로운 추리소설의 방향과 가능성에 대한 여러문제들은
사회파 추리소설가인 마츠모토 세이초의 출현으로 단숨에 해결을 보았다고 한다.

출처 : 야마무라 마사오『추리문단전후사 推理文壇戦後史』pp.86-95(双葉社、1973年)

http://ja.wikipedia.org/wiki/抜打座談会事件


야, 우로부치 할아버지는 어글끄는게 장사셨제 ㅋㅋㅋㅋㅋ

본격파 작가들을 싹다 잡아서 너희들은 돈벌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가 ㅋㅋ 라는 발언은 너무 하지 않냐.
그런 발언에 안 빡칠 사람이 어디 있냐.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다카기 아키미쓰 죄다 빡친것도 이해가 됨.

그 와중에 혼자 좌담회에서 6대1로 문학파한테 다굴당했던 오카다는 이후 에도가와 란포한테 죄다 일러바침 ㅋㅋ
그리고 저런 문학파, 본격파의 대립 중에 좌담회 내용을 실었던 신청년은 휴간되고. 아이고 ㅠㅠ


라이트 노벨과 일반 소설의 중간에 위치하는 작품들 by 각시수련

참고로 저 문학파가 제기했던 여러 문제들은 마츠모토 세이초를 대표로 하는 사회파의 등장으로 나름 해결이 되는데, 
하지만 점점 사회파가 기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1960년대 이르러서는 아예 순문학 자체에 대해서 시비를 걸게 된다. ㅋㅋ

http://ja.wikipedia.org/wiki/純文学論争

1960년대 일본 순문학 논쟁. 히라노 켄 平野謙 에 의해 문제제기 되었다. 

발발 이유는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 중간문학 중에서 사회적 문제점을 고발함과
동시에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대두되었기에 순문학의 개념은 역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요약하면 1950년 오오츠보가 문학파를 칭하면서 본격파 작가들은 돈벌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비난.
문학파가 본격파를 비난한 이 누키우치 좌담회 사건으로 인해서 추리문학계에 문학파와 본격파의 갈등이 심화된다.

또, 이러한 오오츠보 스나오의 발언에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다카기 아키미쓰 등이 화를 냈음. 

이후, 1952년 마동자라는 익명 비평가와 오오츠보가 논쟁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에서 오오츠보는 깨갱한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오오츠보와 다퉜던 '마동자' 의 정체는 다카기 아키미쓰와 야마다 후타로의 두 사람.

둘 중에 특히 다카기 아키미쓰의 경우에는, 1950년 오오츠보의 발언에 격노해서 오오츠보 글이 실린 단행본과 잡지를
목욕물 데우는 겸 불쏘시개 삼아 모두 태워버리면서 분을 풀었던 전력이 있음 ㅋㅋㅋ


누키우치 좌담회 사건이 1950년 사건이고, 마동자 논쟁이 1952년 사건임을 생각하면,
다카기 아키미쓰는 아마 저때부터 오오츠보 스나오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은듯 ㅋㅋㅋ

저 때부터 줄곧 오오츠보 스나오 작품을 불쏘시개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ㅋㅋ

그래서 마동자라는 익명을 써서 탐정작가클럽상을 까는 김에 아예 오오츠보의 실명을 거론하며 덤으로 깐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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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유루유리다이스키 2013/07/28 18:55 # 답글

    요약하자면 작가들이 문단에서 몇번 글로 치고 박고 싸운거에 오오츠보 할아범이있었던거긔?!
  • 감미 2013/07/28 19:37 # 답글

    예술가 집안이였군요.
  • 꽃가루노숙자 2013/07/28 20:13 # 답글

    어찌 보면 부럽네요. 국내에도 이런 파이팅 구도가 있어야 그 장르 자체도 인기를 누리고 발전할텐데.....
  • 잠본이 2013/07/30 01:15 # 답글

    우로부치가 저걸 소재로 해서 괴담을 하나 쓴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고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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