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행 長歌行 - 하달이 그리는 당나라 공주의 복수극



關山萬里路, 拔劍起長歌

관산만리로, 발검기장가

관산의 만리 길, 칼을 뽑아 긴 노래를 읊노라


중국 만화가인 샤다 (하달 夏達, Xia Da) 가 그리고 있는 당나라 공주의 복수극. (환상역사만화, 소녀만화, 전쟁만화)

현무문의 변으로 인해 아버지 이건성을 숙부 이세민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노려지게 된
영녕공주 이장가(李長歌)가 숙부인 이세민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기나긴 여정에 오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중국] 장가행 - 하달이 그리는 당나라 복수극

이 만화의 소개 포스팅을 보고 관심을 가졌었는데, 이제서야 일본어판으로 3권까지 읽게 되었음.
중국어판은 유요기(有妖氣) 에서 인터넷 연재되기 때문에 무료로 볼 수 있다.

장가행 웹연재 주소 : http://www.u17.com/comic/14325.html

http://zh.wikipedia.org/wiki/長歌行_(漫畫)

대개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많은 역사상의 인물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일본어판 단행본에는 목차 페이지에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라고 적혀있다. 대개의 만화에 붙는 문구겠지만.

또, 장가행 자체가 중국 만우 漫友 와 일본 울트라 점프 Ultra Jump 에 동시연재되는 작품이다.
실제로 중국 연재 사이트에 업로드 된 것과 동일하게 일본에서 연재되고 있다. (현재 중국 24화, 일본도 24화.)

중국어판과 일본어 판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다. 뭐랄까 대사의 뉘앙스가 다르고, 아예 대사가 다른 부분도 있음.


  

장가행 일본어판 표지. 좌측부터 이장가 (당나라), 아사나 준 (돌궐), 미미구리 (위구르). (1~3권까지의 표지)


장가행 중국어판 표지. 1권부터 4권까지 전부 주인공인 이장가가 메인.

자,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다. 중국, 일본 동시연재인데 왜 단행본 수가 차이가 날까.
그렇다 ㅋ 나도 그게 궁금해서 중국어판 일본어판을 비교해보니까 중국어 판이 단행본의 수록 화수가 적음.

예를 들면, 일본어판 3권은 12~18화 (7화 분량) 인데 비해, 중국어판 3권은 9~12화 + 번외편 (5화 분량) 이다.
참고로 중국어판 3권에 수록된 번외편 탄화 (昙华, 曇華, 담화) 는 이장가의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처음에 중국어판 1권 표지 봤을 때는 산뜻해서 좋았는데, 다 놓고 비교해보니 일판표지가 임팩트 있고 더 낫더라.



당나라 고조(高祖) 무덕(武德) 9년 음력 6월 4일 경신일, (626년 양력 7월 2일)

태자 이건성(李建成)과 넷째 황자 이원길(李元吉)이 현무문에서 이세민(李世民)에게 죽임당하니,
역사는 이를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이라 칭한다.


이도위(李都尉)의 꽃같은 미모. 감히 누가 남자라 생각하리오.

이장가 李長歌

본 작품의 여주인공. 15세. 영녕공주 永寧公主. 현무문의 변에서 살해당한 이건성의 딸. 호는 영녕 永寧.
아버지를 살해한 이세민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위징 魏徵 의 제자로서 지용을 겸비했다.

처음 봤을 때 여주인공의 장가 長歌 라는 이름은 복수의 길을 떠날 때 본인이 지은 이름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름이 장가였음.

그리고 혹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인가 싶어서 여러모로 찾아봤는데, 이건성의 딸은 두 명이 있었는데,
이건성의 장녀에 대해서는 구당서 旧唐書 와 신당서 新唐書 모두에 별다른 기록이 없음.
다만 차녀에 대해서는 기록이 있는데, 이름은 완순 婉順 이고 출가해서 잘 살았다고함. (622年-661年7月8日)

그럼 혹시 기록이 없는 장녀가 바로 이장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장가에 대한 작중 묘사

1. 장가의 어머니는 위구르 공주 (금색 머리를 가졌다고 묘사) 였으며, 전쟁 중 이건성의 도움을 받아 그와 결혼했다.
회흘(위구르)공주였을때의 이름은 아근(阿瑾) 결혼 후에는 이근(李瑾). 아근의 에피소드는 외전 담화(昙华)에 실려있다.

2. 스스로 돌궐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한 장가를 기특히 여겨 당 고조가 장가에게 상을 주는 장면에서,
고조는 장가의 신분에 대한 언급을 했었고, 또 장가 역시 정식으로 공주가 되었다고 회상하는 장면이 있음.

(이건성은 어린 장가를 돌궐에게 시집보내 화친을 맺으려고 했고, 이를 위해 처음으로 어린 장가에게 말을 걸었다.
때문에 장가는 아버지와 궁궐의 모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돌궐에 시집을 가겠다고 고조에게 말을 한다.
이에 고조와 건성은 기뻐하지만, 이세민이 돌궐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여 결국 중단된다.)

이건성의 태자비로는 정씨(鄭氏)가 있는데, 설마 훗날 황제가 될 태자의 비로서 위구르인을 맞이 했겠나.
때문에 아마도 이장가는 서출이 아니였나 싶음. 그래서 이건성 역시 장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게 아닐까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장가 李長歌 는 허구 인물이고, 하물며 태자비 정씨의 자식은 절대로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출전 : 대당창업기거주大唐創業起居注
   구당서 旧唐書 권 64 열전 제14「은태자건성전 隠太子建成伝」
   신당서 新唐書 권79 열전 제4「은태자건성전 隠太子建成伝」


李建成(589年-626年7月2日)

http://zh.wikipedia.org/wiki/李建成
http://baike.baidu.com/view/111066.htm
http://www.zwbk.org/MyLemmaShow.aspx?zh=zh-tw&lid=263438

http://pure11004.blog.me/120047021903

☆ 장남 은태자 건성(隱太子 建成 589~626) : 태목황후 두씨 生

1. 별칭 : 농서군공(隴西郡公) → 당왕세자(唐王世子) → 황태자(皇太子)
2. 시호 : 식왕(息王) → 은태자(隱太子)
3. 태자비 정씨(鄭氏) : 676년 (상원 3년) 75세의 나이로 사망
4. 자녀(6남 2녀)
 * 장남 태원왕 승종(太原王 承宗) : 요절
 * 차남 안륙왕 승도(安陸王 承道) : 626년 피살 (현무문의 변)
 * 3남 하동왕 승덕(河東王 承德) : 626년 피살 
 * 4남 무안왕 승훈(武安王 承訓) : 626년 피살 
 * 5남 여남왕 승명(汝南王 承明) : 626년 피살 
 * 6남 거록왕 승의(鉅鹿王 承義) : 626년 피살
 * 장녀 이씨
 * 차녀 문희현주 완순(聞喜縣主 婉順) : 자 왕랑(尪娘) / 유응도(劉應道)에게 출가





저 가녀린 공주님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체술과 각종 암기술을 배웠는지
황제의 근위병을 독살시키질 않나. 관청에 숨어들어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함.





하긴 어릴때부터 남달랐던 공주님. 울지경덕 尉遲敬德 에게 무술 배워서 오빠들 패고 다녔다 ㅋㅋ



복수귀가 된 후로부터는 여차하면 동공 심하게 열리시는 공주님 ㅋㅋ


그 제자에 그 스승이라고 방현령과 위징은 공주를 감싸기 위해서 가게를 종업원째로 불질러 없앤다.


이후 장가는 삭주에 가서 태수 공손항의 참군이 되고, 수공으로 돌궐의 선봉을 꺾고 경차도위가 된다.

실제로 경차도위 輕車都尉 면 어느정도 직위인지 궁금해서 당시 당나라 관직표를 찾아봤다.

http://zh.wikipedia.org/wiki/唐朝官職表
http://zh.wikipedia.org/wiki/參軍

훈관 12계. 北朝《木蘭詩》云:「策勳十二轉,賞賜百千疆。」

경차도위(轻车都尉)는 종4품에 해당한다.
훈관은 작호(爵號)만 있고 직무상의 일 (직사 職事) 이 없는 벼슬을 일컫는다.

참군은 군사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고, 당나라 때 경차도위(輕車都尉)는 훈관으로 작호만 있는 벼슬.
그래도 무슨 참군된지 얼마됬다고 한방에 종4품까지 올라가냐.

현무문의 변이 일어나 이세민의 군사에게 쫓기는 첫 장면에서 그녀의 나이는 15세이다.

3권에도 계속 15세이다. 1권에서부터 3권의 끝까지 작중 시간은 4~5개월 밖에 흐르지 않았음.
이장가여, 언제 이세민 잡고 복수하겠냐 ㅋㅋㅋ 레알 장가행 (긴 노래를 읊어라.)

안그래도 길어보이는 여정인데, 3권에서 그녀에게 큰일이 닥친다.

생리가 왔어요 ㅋㅋㅋ 아 이장가 망했어요

이세민한테 복수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지금까지 한 거 개뿔도 없는데 생리가 왔어요.

아 2차 성징 시작되면 이제 남장해도 소용없어요 아 망했어요 ㅋㅋ 

이제 목소리는 가늘고 높아지고, 가슴과 응딩이는 점점 커져만 가고 생리주기 돌아오게 됐어요 ㅠㅠ



아 이거 이러면 안되죠 생리가 왔어요 아 이장가 망했어요




장가행의 이야기 펼쳐지고 있는 당나라 지도. 장안, 낙양, 삭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세민과 힐리가한의 위수지맹 渭水之盟. 장안 40리 앞까지 돌궐 20만이 닥쳐왔던
굴욕을 이세민은 불과 4년만에 힐리가한을 포로로 잡고, 동돌궐을 멸망시킴으로 되갚는다.


작중 연표 (실제 역사와 작중 묘사를 섞어서 모두 기록)

626년 (무덕 9년) 7월 2일 현무문의 변으로 인해서 이건성과 이원길이 사망한다.
   7월 5일 황제 당 고조 이연은 이세민을 황태자로 삼는다.
   9월 4일 이세민이 황제에 오른다.

   현무문의 변 이후, 이장가는 장안을 떠나 공손항이 태수로 있는 삭주 朔州 로 향한다.
   장가는 계략을 써 공손항의 처자를 구하는 일을 가장하고, 그의 참군 參軍 이 된다.

   공손항의 참군(군사)으로서 장가는 수계 水計 를 이용하여, 돌궐의 선봉부대를 물리치고 경차도위에 봉해짐. 

   당태종 즉위 직후 화친을 맺었던 돌궐이 20만 병력을 이끌고 장안성의 바깥인 위수 편교의 북쪽까지 침공.
   이때 돌궐의 20만 병력과 장안성의 거리는 40리에 불과했다고 한다. 구당서에 의하면 화가 난 태종은 고작 6기를
   데리고 돌궐군의 힐리가한에게 직접 협정위반을 비난함. 이 모습에 겁을 먹은 돌궐은 퇴각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태종의 용맹함을 과장한 내용이고, 태종의 당군과 공물을 바치겠다는 말에 협정을 맺고 돌아간 것으로 보임.
   어찌됬건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위수지맹 渭水之盟 이다.

   하지만 공손항이 태수로 있는 삭주 朔州 는 돌궐의 침공을 피하지 못했고, 백성을 생각한 공손항은 자신의 목을
   가지고 항복하라고 하면서 장가에게 호부를 주고 자결. 공손항이 자결한 것을 보고 그의 아내 역시 자결한다.
   장가는 공손항의 호부와 재산, 그의 딸 원瑗 과 진노인을 맡게 되고, 두소년과 진노인에게 원을 데리고 피하라 한 뒤
   홀로 공손항의 목을 가지고 아사나준 阿史那隼 에게 항복한다. 약속대로 아사나준은 삭주 백성에게는 손대지 않는다.
   다만 아사나준은 장가를 자신의 개로 삼는다며, 장가를 자신의 돌궐족 진영으로 데리고 간다.
   
   아사나 준의 진영에서 장가는 위구르인 미미구리 弥弥古麗 를 만나고, 그녀를 자신의 시중으로 삼는다.
   이후 장가는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서 아사나준을 설득하고, 그의 군사가 된다.

   그의 군사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궐에게 투항하려는 연왕 나예 燕王 羅芸 를 만난다. 나예는 이건성과
   사이가 좋았고, 유주 豳州 에서 이세민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 재기를 위해 돌궐에게 투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장가는 말리고, 나예는 장가에게 병부와 정예기병인 연운18기 燕雲十八騎 를 주고 사망한다. 

   (실제 역사상 나예 羅芸 는 처자를 버리고 돌궐에 투항하려다가 측근의 배신으로 사망. 수급은 장안에 내걸림.)
  
   아사나준은 돌궐 내부의 세력다툼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이에 장가는 북쪽으로 향할 것을 진언.
   현재 대가한 大可汗 (동돌궐의 칸) 힐리가한 頡利可汗 의 양자인 아사나 준의 세력은 북쪽으로 향한다.

   2개월에 걸쳐 북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은 아사나준은 과거의 은인 오단 奥丹 이 속한 거란족을 돕기 위해,    
   장가의 진언으로 만든 상단에 거란족을 더한다. 준의 이런 움직임에 소가한은 힐리가한의 승인을 얻고,
   아사나 준을 기습해서 죽이려고 함. 하지만 소가한 아사나 사이 社尓 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간다.

   사실 힐리가한의 양자인 준은 거란족 契丹族 이였고, 힐리가한은 준이 거란에 붙어 반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것.
   여기까지가 장가행 20화까지의 이야기. 현재 작중 시간은 대략 626년 말로 보이고 627년에 돌입했는지는 불명.

   다만, 실제 역사상 627년 (정관 원년) 나예가 반란을 일으키고 패해 사망하니, 이미 627년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있음.

   (현재 장가행은 24화까지 연재되었다.)

627년 (정관 원년) 당 태종은 연호를 정관 貞觀 으로 한다. (이후 649년까지 정관지치 라고 불리는 치세가 지속.)

   정관지치 貞觀之治 : 중국 당(唐) 나라 태종의 연호인 정관 (貞觀:627~649) 시대에 이룩한 빛나는 정치.
   개원 (開元 : 현종의 연호 713~741) 의 치(治)와 함께 중국 역사의 황금시대로 꼽힌다.

629년 (정관 3년) 당 태종은 위수지맹 이후 착실히 꾸려나가 충실해진 국력으로 돌궐토벌을 실시한다.

630년 (정관 4년) 출병한 이적 李勣 과 이정 李靖 은 돌궐의 칸(가한)인 힐리가한을 포로로 잡는다. 동돌궐은 일시적 붕괴.
   서북방의 여러 유목민 부족들은 당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여러 유목민들은 장안에 집결해 태종에게
   천가한 天可汗 의 칭호(천가한은 북방유목민족의 군주인 칸=가한보다 높은 상위의 군주를 의미하는 칭호)를 얻었으며,
   이에 당의 황제는 중화의 천자임과 동시에 북방민족의 수장으로서의 지위도 획득하게 된다.    


등장인물 중 역사상 유명한 이세민의 네임드 신하들



위징 [魏徵, 580 ~ 643]

당(唐)나라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로 간의대부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재상을 지냈다.

자 현성(玄成). 시호 문정공(文貞公). 곡성(曲城: 山東省) 출생. 수(隋)나라 말 혼란기에 이밀(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나
곧 당고조(唐高祖)에게 귀순하여 고조의 장자 이건성(李建成)의 유력한 측근이 되었다.

황태자 건성이 아우 세민(世民: 후의 太宗)과의 경쟁에서 패하였으나 위징의 인격에 끌린 태종의 부름을 받아
간의대부 (諫議大夫) 등의 요직을 역임한 후 재상(宰相)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굽힐 줄 모르는 직간(直諫)이 유명하며,
주(周) ·수 ·오대(五代) 등의 정사편찬(正史編纂) 사업과 《유례(類禮)》《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의 편찬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태종은 그가 죽은 뒤 비석을 세워 주었다가, 후에 위징이 평소에 직간한 초고를 집에 남겨 둔 것을 보고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냈다고 격노하여 비석을 넘어뜨리라 명함. 하지만 고구려 정벌에서 패하고 와서 뉘우치고 비석을 다시 세웠는데,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나를 말렸을텐데' 하고 후회했으며, 그가 죽었을때는 '짐이 이제 한 거울을 잃었노라.' 고 말했다.


방현령 [房玄齡, 578 ~ 648]

중국 당나라 때의 재상. 당나라가 일어나자 태종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치조우[齊州] 린쯔[臨淄: 山東省] 출생. 대대로 북조(北朝)를 섬기고, 18세에 수(隋)나라의 진사(進士)가 되었다.
당나라가 일어나자 태종(太宗: 이세민)의 세력에 가담,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태종이 즉위하자 중서령(中書令)이 되고, 이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었다.
정치에 밝고, 공평한 태도로 일관하였기 때문에 두여회(杜如晦)와 더불어 현상(賢相)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정관지치(貞觀之治)는 그들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태종의 신임이 지극하여 고구려 공격 때에는
장안(長安)에 남아 성을 지키기도 하였다. 태종의 소릉(昭陵)에 배장(陪葬)되었다.


두여회 [杜如晦, 585 ~ 630]

중국 당(唐)나라 창업기의 재상. 태종 즉위 후 병부상서(兵部尙書)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등의 요직을 맡았다.

자는 극명(克明). 경조두릉(京兆杜陵: 산시성 장안현) 출생. 대대로 북조(北朝) ·수(隋)에 벼슬하던 관료 집안 출신으로,
수나라 때 현위(縣尉)가 된 후 초야에 묻혀 있었으나, 당나라 태종(太宗) 때 벼슬에 나가 진왕부병참군(秦王府兵參軍)이 되어
각처를 전전하였다. 문학관(文學館) 18학사의 한 사람으로 방현령(房玄齡)에게 그 재능이 인정되어 태종 즉위 후는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 ·병부상서(兵部尙書)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등의 요직을 맡아 일하고, 채국공(蔡國公)에 봉해졌다.

당의 법률제도의 인사행정을 정비하여 당조 확립의 입안추진자로서 방현령과 더불어 '정관의 치' 를 구축한 명신이었다.


그외 등장장면이 꽤 있었던 역사상 실제 인물들


나예 [羅芸, 생년미상 ~ 627]


수당(隋唐) 시기 양주(襄州) 양양(襄陽) 사람. 경조(京兆) 운양(雲陽)에 살았고, 자는 자연(子延)이다.

성격이 강퍅불인(剛愎不仁)했고, 싸움에 용감했다. 창을 잘 썼다. 수나라 대업(大業) 연간에 전공으로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에
임명되고, 탁군(涿郡)을 지켰다. 12년(616) 병사를 일으켜 유성(柳城)과 회원(懷遠) 등지를 빼앗고 유주총관(幽州總管)이라
자칭했다. 당고조(唐高祖) 무덕(武德) 원년(618) 당나라에 귀순하여 이씨 성을 하사받고 연군왕(燕郡王)에 봉해졌다.

당나라를 도와 유흑달(劉黑闥)을 패배시키고 천절장군(天節將軍)에 임명된 뒤 경주(涇州)를 지켰다.
정관(貞觀) 원년(627) 병사를 이끌고 당나라에 반기를 든 뒤 유주로 들어가 대치했는데, 나중에 패해 처자를 버리고
수백기로 돌궐에 피하려고 했다. 영주 寧州 부근에 이르러 오씨역 烏氏駅 을 지나칠때 측근에게 살해당한다.

그의 수급은 장안 長安 을 옮겨져 내걸리게 되었다. 동생인 나수 羅寿 는 이주도독 利州都督 이였는데 그 역시 처형당했다.


이순풍 [李淳風, 602~670]


당나라 기주옹(岐州雍) 사람. 당나라 초기 태종 때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됨이 준상(俊爽)했고, 많은 책을 읽었으며, 음양역산(陰陽曆算)에 밝았다.
정관(貞觀) 초에 장사랑(將仕郞)으로 태사국(太史局)에서 일하며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하여 별을 관측했다.
『법상지(法象志)』 7권을 지어 올리니 승무랑(承務郞)이 더해지고, 태상박사를 거쳐 태사령이 되었다.

당시 민간에『비기(秘記)』가 있어 여주(女主) 무왕(武王)이 천하를 대신한다고 했다. 태종이 의심스러운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하니 그만두기를 권했다. 항상 길흉을 점칠 때마다 잘 들어맞았다. 창락현남(昌樂縣男)에 봉해졌다.

인덕력(麟德曆)을 편찬했고, 오조(五曹), 손자(孫子) 등의 옛 산서(算書)를 주해했으며,『진서(晉書)』와『오대사(五代史)』
의 율력지(律曆志)를 편찬했다. 저서에『전장문물지(典章文物志)』와『을사점(乙巳占)』,『비각록(秘閣錄)』등이 있다.

신라 신문왕때 당 고종은 신라에 사신을 보내 말하길 "짐의 성고(태종)는 어진 신하인 위징, 이순풍 등을 얻어 마음을 합하고
덕을 같이 하여 천하를 통일하였다. 神文王時 唐高宗 遣使新羅曰 朕之聖考 得賢臣 魏徵 李純風等 協心同德 一統天下" 라고 했다.

당 고종이 아버지의 신하였던 위징과 이순풍을 신라에게까지 자랑하며 칭찬했던 만큼, 이순풍 역시 훌륭한 신하였음.



장가행 일본어판의 문제점

중국어판이 인터넷에서 무료게재가 되어 있어서 일판과 비교해보니까 군데군데 대사가 미묘하게 다르다.
가끔 보다보면 좀 많이 다른 부분들도 있긴 하지만 내용의 큰 흐름에 장애를 줄 정도는 아니다.

예를 들면 1화에서 장가가 과자를 산 가게 이름이 중국판에는 품향재(品香斋) , 일본판에는 품향루(品香楼) 라고 기재.
재 斋 는 주로 서재·상점·학교 기숙사 등의 이름에 쓰이고, 루 楼 는 고층 건물·요릿집 등의 옥호에 붙이는 말이다.

뭐, 대사가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른건 그나마 봐줄수 있겠는데, 일본어판은 중요한 한자 인명표기가 가끔 맛이 가버림.

※ 만약 나중에라도 국내에 번역되서 들어온다면 일본어판이 아니라 중국판을 바로 번역해서 들여왔으면 좋겠음.



http://ja.wikipedia.org/wiki/頡利可汗

힐리가한 頡利可汗 (일릭 카간) (카간 = 칸)

동돌궐의 칸인 힐리가한 頡利可汗 같은 경우에는 초반에는 頡利可汗 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吉利可汗 이 되버림 ㅋㅋ
음독으로 읽으면 똑같기는 한데, 한자표기가 바뀌었음. 

원래 힐리가한 자체가 고대 투르크어 (일릭 카간) 를 음차표기한 말인데 쟤네들도 별 생각없이 음차표기하다 저렇게 된듯.





http://zh.wikipedia.org/wiki/义成公主

의성공주(義成公主) : 돌궐칸에 시집간 수나라 공주
http://blog.daum.net/shanghaicrab/14686840

힐리가한은 그렇다쳐도 의성공주 義成公主 (중국어판) 를 건성공주 建成公主 (일본어판) 으로 만들어놨음.
의성공주는 실제 역사상 인물인데, 이름을 바꿔서 표기해버리면 어쩌자는 말이냐 ㅋㅋ

의성공주는 돌궐칸 4명에게 연달아 시집을 가서 가돈 可敦 (카툰, Khatun : 황후 皇后) 이 되는데, 이는 형사취수제 때문.

돌궐에는 레비레이트 혼 (Levirate marriage) 이 있는데 바로 취수혼(娶嫂婚). 이는 유목국가에서 볼 수 있는 혼인 스타일로
남편을 잃은 아내는 남편의 형제 혹은 아들에게 다시 시집가는 결혼풍습. 단, 아들의 경우에는 피가 이어지지 않을 아들에 한함.

수나라의 공주로 원래 돌궐과의 화친을 위해 수나라 문제가 정략결혼으로 계민가한 啓民可汗 에게 시집을 보내지만,
계민가한이 일찍 죽고 이어, 그녀는 그의 세 아들에게 다시 시집을 가는데, 또 사망. 그녀는 총 4번 연이어 결혼하게 된다.

계민가한 啓民可汗 587-609 / 시필가한 始畢可汗 609-619 / 처라가한 処羅可汗 619-620 / 힐리가한 頡利可汗 620-630

정략결혼으로 돌궐에 시집 갔지만, 수나라는 망하고 이어 남편도 줄줄이 죽고, 끝내는 당나라 이정의 손에 죽은 의성공주.
그녀만큼 불쌍한 인생도 없으리 싶다. 마지막 남편이였던 힐리가한은 그녀를 두고 도주. 결국 포로로 잡힘. 한심하다.


장가행 이후의 전개에 대해서

혹시 측천무후 루트 타는게 아니냐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태종이 무조(무측천)을 후궁으로 들였을 때
무조의 나이가 14세였음. 무조는 637년 (정관 11년) 후궁으로 들어가 재인 才人 (비, 정5품) 이 된다.

근데 이미 이장가의 나이는 15세. 그리고 현무문의 변 (626년) 때, 무조(623년생)의 나이는 세살 밖에 안 됨.
또 이세민 다 부숴버릴거야 라는 이장가가 후궁으로 들어가서 훗날 여황제가 된다는 거는 말도 안되는 듯.

하긴 픽션이고 현재 상당수가 허구인물들이니 그렇게 되버릴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끝나면 너무하지 않냐.

앞으로의 전개에서 큰 역할을 담당할 만한 인물은 거란족이라고 아웃팅 당한 아사나준 ㅋㅋ
그리고 두소년 竇少年. 일본어판에는 두소년이라고 적혀있는데, 중국어판에는 아두라고 적혀 있는 것 같더라.

얘도 이세민한테 뭔가 원한이 있는 것 같던데 정체가 궁금함. (이장가 15세, 두소년 13세.)

그리고 현재까지 이장가가 얻은 인재들과 물건들. (20화까지.)

두소년, 서풍, 진노인. 삭주 태수의 호부. 연왕 나예의 병부와 그 휘하의 정예기병, 연운18기 燕雲十八騎.
미미구리. 그리고 현재 아사나준의 신임과 그 부하의 신뢰인데, 이건 자기 정체를 아직 안 밝혀서 불확실요소.








그리고 공손항의 심복이였던 이름 모를 간자. 이름이 엄청 궁금했는데 20화 되서 겨우 나옴.


얘 이름이 서풍 緖風 이였음.

또 매력적인 아군 인물 중에 귀염둥이 위구르 (회흘 回紇) 금발 미녀 미미구리 (미미고려,弥弥古麗)가 있다.

※ 구리 (고려 古麗) 는 위구르 말로 꽃이라는 뜻이다. 

신장 위구르에 가 본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발견을 하게 되는데, 
바로 위구르족 아가씨 이름 중에 "구리" 라고 불리는 것이 매우 많다는 것.

"구리(古丽,古麗)" 는 위구르 언어로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중에서도 특히 페르시아, 터키어로서 구리 Gül 는 장미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한족사람이 좋아하는 자기 딸의 이름을 지을 때, 좋아하는 "향, 꽃, 난초, 매화" 등의 글자를 사용하는 습관과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단거 먹고 미각의 삼천세계 느끼고 있는 미미고려.

1권에서부터 2권까지는 꽤 재밌었음. 장안과 삭주에서 이장가의 활약상. 은 나름 임팩트 있었다고 봄.

다만, 삭주에서 돌궐의 포로가 된 후로부터는 좀 처지는 듯한 느낌이 다소 들더라.

특히 생리 이후 부터는 야 이장가 갈길이 먼데 망했어요. 특히, 역사대로 간다면 이세민 엿먹이는 건 불가능.
이지만 이미 많은 허구 인물들이 나왔고 역사와는 다른 일들이 꽤 벌어졌으니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를 일. 
자신이 돌궐 늑대 후손인 아사나씨가 아니라, 거란인이라는 것을 안 아사나준 (허구인물) 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주목.

그리고 실제 역사 배경상 동돌궐은 칸인 힐리가한이 포로로 잡히면서 일시적으로 멸망 (630년) 해버리는데,
이후 당나라의 기세가 뻗어나기 전에 어떻게 손 쓰는게 중요해 보임. (현재 626년 혹은 627년 초, 앞으로 3년 남음.)

그 해 내부세력분열과 철륵 鉄勒 (중앙 유라시아 북부에 분포한 돌궐 이외 투르크계 유목민의 총칭, 위구르 回鶻 가 태두)
의 여러 부족의 반란, 천변지이 (그 해에 눈이 엄청나게 내렸다고 함) 등 역시 동돌궐의 멸망에 한몫한 이유들이다.

전개상 주인공 일행들 역시 저런 시대적 흐름에 일조하는 행동을 할 거라고 추측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두소년 竇少年 한테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었으면 좋겠음.


・현재 하달의 만화 장가행(長歌行) 은 중국 만우(漫友)와 일본 월간 울트라 점프(Ultra Jump)에서 동시연재중이며,
중국에서는 유요기 사이트에서 한 화를 월 2회로 나눠서 무료 웹연재를 하고 있다.

단행본은 일본판은 3권까지, 중국판은 4권까지 나와있음. (화수로 치면 중국, 일본 모두 현재 24화까지 연재되었다.)
근데 이거 월간 연재던데 젭라 이런 스케일에 현재 속도로 계속 연재되면, 도대체 언제 완결나겠냐 ㅠㅠ

픽션이기는 한데, 실제 해당년도의 역사적인 일과 인물들을 찾아가면서 보니, 재미가 두배로 늘어나더라.


덧글

  • 익명씨 2013/07/13 09:19 # 삭제 답글

    오오 !!! 신난다

    정관지치의 핵심쌍웅인 방현령과 두여회를 만화에서 볼 기회가 있군요 ㅎㅎ
    위지경덕 얼굴이 궁금해지네요
  • 세이렌 2013/07/13 13:00 # 답글

    오호, 라이트 노벨 바람의 왕국 같이 실제 역사와 약간의 허구를 섞은 얘길 좋아라 하는데 함 찾아봐야겠네요 ㅎㅎ
    역시 이런류의 이야긴 실제 역사와 대조해보면서 읽으면 재미가 늘어나죠 ㅎㅎㅎ
  • 북극양 2013/07/13 13:46 # 답글

    엇! 이분 작품이 나왔군요. 정발되었으면 좋겠어요ㅠㅠ
  • 만보 2013/07/13 14:29 # 답글

    겨우 1권밖에 보지 못해서 이야기 진행을 모르고 있었는데 잘 설명해주셔서 추구 구입에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설정구성이 어느정도 강하게 넓어질 것 같으면서도 중심 인물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는데 조금씩 색다른 재미를 보여줄 것 같아서 기대를 하게됩니다. 멋진 마무리를 기대해보는 작품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 잠본이 2013/07/13 19:11 # 답글

    주인공 최대의 적수가 2차 성징이라니 아이고 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공 2013/07/14 01:49 # 답글

    위징하고 방현령이 악역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꼬마애 2013/07/22 21:54 # 삭제 답글

    뜬금없지만 설인귀?
  • 황룡 2013/08/19 03:34 # 삭제 답글

    위수지맹을 꼭 굴욕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중간의 과정이 어떻든 당태종 스스로 나서서 힐리가한과 대면하여 만나서 당나라의 위기를 구한 그 용기를 과대평가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오히려 꼭 굴욕적으로 물리친건 아닙니다. 힐리가한 모르게 언덕에 군세를 과장하여 보이게하고 만약 물러나지 않으면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뜻을 보이면서 힐리가한을 겁주고 좋게좋게 협약을 맺었으니깐요. 예로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수나라 양제가 다시 처들어오니 투항해온 곡사정을 보내어 위기에서 벗어났고 고려의 원종도 쿠빌라이를 만나 고려를 위기에서 구했구요.

  • nair 2013/09/08 22:50 # 삭제 답글

    아사나 준이 혹시 이굴가일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거란혈통의 아사나 라는 말에 아사나 이(이진충)의 조부인 거란 초대 지도자 이굴가가 떠올라서요.
  • tkfmak 2013/09/24 20:42 # 삭제 답글

    고구려는 왜안나올까요? ....위구르족까지 나온다면 고구려는 더욱나와야할텐데요..혹시작가가 일부러 고구려는 제외시켜놓은걸까요? 나중에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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